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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어렵다. 교과부 당국자나 대학 측은 부인하지만, 논술은 옛날 70년대의 ‘본고사’ 만큼이나 어렵다. 그 어려움 중의 하나는 논제 읽기의 어려움이다. 한국형 논술은 논제와 함께 제시문을 주는데, 우선 논제를 읽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중 한 사람인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일찍이 “평생 글을 써온 나도 대입 논술 문제는 어렵다”고 한 적이 있다. 글솜씨나 논리력, 배경지식 모두 탁월한 이 고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마 논제 읽기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논제를 보자. “제시문 <가> <나> <다> <라>에 나타나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타율성의 성격을 각각 비교· 설명하시오.(600자 내외)” /2010학년도 성신여자대학교 수시1차 2번
논제는 보통 이처럼 아주 짧아서, 읽는 데 10초도 안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논제를 그렇게 빨리 읽고 제시문으로 넘어가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출제 교수가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사항의 90% 이상이 논제 안에 있기 때문에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그 요구를 알 수 없게 되고, 논점일탈하기 때문이다. 특히 논제 안에는 ‘답안의 구조’가 있다. 논제를 잘 읽으면 답안을 몇 개 문단으로 나누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놓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아니, 도대체 이 문제는 무슨 말인가? 제시문 <가> <나> <다> <라>를 비교하라고 했으니 가와 나, 가와 다, 가와 라, 나와 다, 나와 라, 다와 라 등 총 6개의 비교를 하라는 말일까? 그렇게 하려면 600자는 너무 적어보인다.
‘각각’ 비교하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위에서 한 것처럼 문제를 해석하면 ‘각각’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결국 이 문제는 “제시문 <가> <나> <다> <라> 각각에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타율성이 묘사돼 있으니 지문 내에 나타나는 자율성과 이를 침해하는 타율성을 비교하라”는 문제다. 이 문제는 그렇게 각 제시문마다 자율성과 타율성을 비교해야 하므로 4개 문단으로 나누어진다. 그렇다면 각 문단을 150자 정도로 쓰면 되겠다. 또 제시문 안에 이미 자율성과 타율성이 있으므로 이를 분석, 요약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학생들은 보통 이 문제에 대해 제시문 각각에 나타나는 타율성이 무언지를 정의하고 “이 타율성의 성격은 무엇이다”라는 방식으로 답한다. 그렇게 답할 경우, ‘타율성의 성격’에 대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배경 지식으로 메우게 된다. 그러나 논술은 “문제 안에 답이 다 있는” 시험이다. 대학 출제위원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배경지식을 동원한 이런 방식의 답은 논점일탈이 된다. 논점일탈의 원인은 논제의 오독이다.
논제는 짧게 나오지만 이처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올바른 해석은 한 가지밖에 없다.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논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이다. 논제를 길게 쓰면 사실상 답을 다 가르쳐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출제 교수는 가능한 한 논제를 짧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가 수반되기도 한다. 만약 신문사에서 기자가 썼다면 데스크에게 혼나기 딱 좋은 글들이 대입 논술 논제에는 가끔 나타난다. 그러니 수험생으로서는 출제의도를 필사적으로 분석해내는 수밖에는 없다. 만약 논제가 길게 출제됐다면, 수험생으로서는 ‘힌트가 많구나’하고 반겨야 한다. 그 힌트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분석 해내서 답안 작성에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논제도 한번 보자. “제시문 가를 참고하여 제시문 나의 실험 결과를 그 원인과 함께 해석하시오.(400~500자)” / 2010 한양대 모의
이 문제는 무슨 뜻일까? 도대체 “원인과 함께 해석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실험결과의 원인을 쓰고 그 다음에 그 결과를 해석하라는 말일까? 그냥 원인만 쓰라는 말일까? 논제만 놓고 보면 전자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제시문 나의 실험 결과 ▲제시문 가의 관점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본 원인 ▲실험 결과의 해석 이렇게 4개 내용으로 구성돼야 한다.
대입 논술은 이렇게 논제 안에 답안의 구조가 다 있다. 그러므로 논제에서 답안의 구조를 파악해내는 일이 급선무다. 이는 제시문을 읽기 전에 먼저 논제만 읽고 수행해야 하는 과제다. 논제를 읽어내기 위해서 내용적으로 제시문을 참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수험생은 기본적으로 “논제 안에서 답안의 구조를 추려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논술 문제를 대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제시문을 읽기 전에 논제를 정밀하게 읽어내는 일이다.
글:김왕근 선생(신우성논술학원 강사, 서울대 외교학과, 同 대학원, 전 조선일보 기자, ‘막판논술’ 저자)
문의:대치동 신우성논술학원(정규논술반, 논술캠프 상담 02-3452-2210, www.shinwoosung.com)
※뉴스와이어 기사 제공
논제 안에서 논술답안 구조를 찾아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