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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사는 회사원 남지민(33·가명)씨는 2008년 여름 만삭의 몸으로 만 2세 된 첫째 아이를 맡길만한 어린이집을 찾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남씨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아이 둘을 함께 봐 줄 수 없다고 해서 첫째를 보육시설에 보내려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지만, 한 달 만에 끊었다. 남씨는 "젖먹이부터 4살까지 3~4평짜리 좁은 방에 몰아놓고 하루종일 지내게 했는데 탁아소만도 못했다"며 "둘째를 낳은 뒤에도 두 달 동안 다른 보육시설들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남씨는 교회·성당·기업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등 여섯 군데를 돌아다녔다. 남씨는 "기업체가 운영하는 저렴하고 보육 환경이 좋은 어린이집은 경기도에 사는 부모들이 '원정 등록'까지 해서 이미 정원이 차 있었다"고 했다. 남씨는 결국 한 달에 70만원이 드는 사설 유치원에 첫째를 보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살려 둘째 아이는 좋다고 소문난 구립(區立)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남씨의 둘째 아이는 지난 4월 가까스로 순번이 돌아와 구립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태부족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어린이집 실태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 정원의 79.3%만 채워지고 있다. 오히려 빈자리가 많다는 이야기다. 반면 전체 어린이집의 35.6%는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몰린다. 보육시설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중국집, 단란주점과 한 건물 쓰는 어린이집
서울 강동구의 한 어린이집은 같은 건물에 중국음식점, 곱창 파는 식당, 닭발요리집이 있다. 건물 2층 어린이집으로 1층 중국집 기름 냄새가 하루 종일 올라온다. 중국집과 한 건물을 쓰는 양천구의 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한 부모는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아이가 기름 냄새에 절어 있어 매번 속상하다"면서 "주변에 마땅히 보낼 데도 없다"고 했다. 단란주점·노래방·PC방·당구장·호프집 등과 같은 건물을 쓰는 어린이집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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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각종 질병을 옮아오기도 한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유모(29)씨는 6개월 전부터 3세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독감이 걸려 일주일을 쉬었는데,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다음 날 수족구병(手足口病·손·발·입 등에 작은 수포가 생기는 질병)에 걸려왔다. 유씨는 "애가 하도 병에 많이 걸려와서 결국 아내가 직장도 쉬고 하루 종일 애를 봐주고 있다"고 했다.
미취학 아동 부모 100만명 이상이 회원으로 있는 인터넷 카페 '맘스홀릭 베이비'에는 보육시설에 대한 부모들 사연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한 부모는 "애들이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는데 선생님은 휴대폰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더라"며 "맘 편하게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썼다.
◆비싼 시설에 보내야 하는 엄마들
서울 강남에 사는 직장인 박모(33)씨는 4세 딸을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내다가, 작년 9월부터 한 달 평균 80만~90만원 드는 놀이학교로 옮겼다. 박씨는 "어린이집 원장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급식을 해서 아이가 장염을 크게 앓았다"며 "놀이학교가 비싸긴 하지만 아이 건강과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바꿨다"고 했다. 놀이학교는 6~8명 정도를 한 반으로 운영하는 고급 학원으로, 한 학기 교재와 재료비로 30만원가량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박씨는 또 놀이학원이 끝난 뒤 아이를 봐주는 도우미 아주머니 비용으로 110만원을 쓰고 있다. 한 달 20여만원이면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지만, 박씨는 10배인 200여만원을 내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젊은 부부 애태우는 '보육 현실'] [1] 믿고 맡길 만한 시설이 없다
젖먹이~4세 좁은 방에 가득…
독감·수족구병 단골로 옮아와
음식점 2층에 어린이집, 종일 기름냄새 올라와…
저렴하고 환경 좋은 곳은 대기자 줄줄, 꿈도 못 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