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 애태우는 '보육 현실'] 맞벌이 엄마 퇴근 때까지… 대형마트서 노는 아이들
<특별취재팀>
김시현 기자 shyun@chosun.com
송원형 기자 swhyung@chosun.com
박진영 기자 jyp@chosun.com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기사입력 2010.06.14 03:08

게임코너서 쭈그려 몇시간, 시식 음식으로 배채우고… 우리 보육현실의 현주소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대형마트 완구코너는 '어린이 고객' 8명이 점령하고 있었다. 5~9세로 보이는 아이들 3~4명은 비디오 게임 시연 코너에서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김예준(7·가명)군은 동생 예빈(5·가명)양과 매장 전시용 기차 장난감을 갖고 30여분 동안 놀았다. 마트 직원이 "부모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엄마·아빠는 회사에 가고 없어요. 우리끼리 왔어요"라고 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김군은 수업이 끝나면 집에 들러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서 논다.



  • 지난 7일 오후 서울 금천구의 한 대형마트 게임시연 코너에서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게임을 하다 지쳐 고개를 숙여 졸고 있다.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 지난 7일 오후 서울 금천구의 한 대형마트 게임시연 코너에서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게임을 하다 지쳐 고개를 숙여 졸고 있다.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남매는 게임 코너에서 마음껏 게임을 하다가 마트를 돌며 군만두 같은 무료 시식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김군은 "여기는 시원하고 공짜로 먹을 것도 많아 자주 놀러 온다"며 "집에 게임기가 없는 친구들과 올 때도 있다"고 했다. 김군 남매는 완구 코너에서 로봇과 인형 장난감을 구경하다가 오후 5시가 되자 "엄마 올 시간이 됐다"며 돌아갔다.

    A마트 관계자는 "직장 다니는 어머니가 오전에 어린 아이들을 마트에 두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노는 아이들 상당수는 마땅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다. 마트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게임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고, 서적코너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친구가 많을 때는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카트 놀이'를 하거나 넓은 마트 곳곳에 숨는 숨바꼭질을 한다.

    서울 구로구 대형마트 직원 김모(29)씨는 "일주일에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마트에 온다"며 "무빙워크 손잡이에 걸터앉거나 카트에 친구를 태워 힘껏 미는 모습을 보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문구류를 훔치거나 몰래 즉석 음식을 화장실에 가져가 먹어치우는 경우는 부모에게 연락하지만 "내가 지금 직장에 있으니 갈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어떤 아이들은 매일 얼굴을 보니 익숙할 정도"라며 "'지금 학교 갈 시간인데 학교는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없이 삐죽 인상을 쓰며 돌아가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보육정보센터 홍은주 소장은 "'마트 아이들'은 믿고 맡길 데가 없는 우리 보육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교사와 보육시설의 질을 개선해 부모들이 보내고 싶은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소아정신과)는 "자기 나이에 걸맞은 곳에서 벗어나 있는 마트 아이들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능 저하나 인격 장애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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