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하는 초등학생… 독서토론하는 고등학생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기사입력 2010.06.28 03:13

초등생…어휘력 튼튼해져 말하는 자신감 쑥쑥
고교생…발표한 내용 글로 담으면 그대로 논술

  • 독서의 효과를 높이려면, 읽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해야 한다. 독후활동에는 책의 내용을 글이나 그림·표·도식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신문·광고전단으로 정리하는 방법 등이 있다. 독서 기록장을 바탕으로 감상문·만화·이야기 마인드맵을 활용해 읽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독후 활동 중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독서토론'. 하지만 '독서토론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독서토론으로 책 읽기와 공부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의 이야기와 쉽고 재미있게 독서토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들어봤다.

    ●독서토론하는 초등학생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해보니 집에서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배우는 것이 많아졌어요. 또 학교에서 발표도 더 잘하게 됐어요.”

    4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받는 현승연(서울 도곡초3)양은 독서토론을 하면서 말 실력이 부쩍 늘었다. 현양과 한 조를 이룬 장유선(서울 언북초3)양도 독서토론 덕분에 책 읽기를 더욱 즐기게 됐다. “친구들의 의견을 들으며 ‘나보다 더 나은 생각을 했구나’라며 감탄하곤 한다”고 했다. 최성우(서울 도곡초3)군 역시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나도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준비를 많이 해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벌써 3년째 독서토론을 하는 주민서(서울 대치초3)군은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거나, 낱말카드로 단어를 공부하면서 어휘력이 부쩍 높아졌다”고 전했다.

  • 독서토론 중인 초등학생들./이경민 기자 kmin@chosun.com
    ▲ 독서토론 중인 초등학생들./이경민 기자 kmin@chosun.com
    독서토론은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까. 정은주 한우리독서논술 강남직영지부 원장은 “독서토론을 통해 책을 서너 번 반복해 읽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한 권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반면 요즘 아이들은 책은 많지만 읽을 시간이 없죠. 이럴 때 독서토론을 하면 책을 여러 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 간 사자’라는 책을 읽고 나서 책 속 이야기처럼 상상을 해보는 거예요. ‘내가 학교에 가기 싫다면 어떻게 할까? 나와 같은 로봇을 만들어 대신 보낼까?’ 같은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겠죠.”
    독서토론은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게 한다. 또 의사소통 과정을 경험하면서 자기 생각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조리 있게 말하는 언어구사력을 키울 수 있다. 김수연 한솔교육 주니어플라톤 선임연구원은 “책을 읽고 공통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아이들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주 원장 역시 “똑같이 공부한다면 책을 읽고 토론하며 배경지식과 어휘력을 키운 아이가 훨씬 우수한 성적을 낸다”고 귀띔했다.

    “독서토론을 하며 아이들은 사회문제나 이슈까지 자연스럽게 접합니다. 예를 들면 ‘말 못하는 양반’이라는 전래동화를 읽고, ‘인터넷 용어 사용 문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해보는 식이에요. 아이가 ‘흰 종이수염’이라는 책을 읽을 때, ‘이 책은 전쟁에 대해 다룬 책이야. 전쟁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면서 읽고, 나중에 엄마랑 이야기해 보자’고 권할 수도 있죠. 책을 읽을 때는 독후활동만큼이나 ‘읽는 과정’도 중요한데, 생각할 거리를 미리 던져주면 아이가 더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어요.”

    독서토론은 최근 확대되고 있는 서술·논술형 평가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 읽기 능력이나 사고력 기초를 튼튼하게 잡지 못한 아이들은 서술·논술형 평가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김수연 연구원은 “정답·오답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요즘, 다양한 장르의 책 읽기와 꾸준한 독서토론 활동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생활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반대의견에 부딪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정확하게 전달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토론으로 익히기 때문이다. 정은주 원장은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가정에서 독서토론을 생활화하면, 부모자녀 사이의 의견 충돌을 막을 수 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부모자녀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고 조언했다.

    ● 독서토론하는 고등학생

    “오늘은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볼까?”

    경기 고양시에 있는 행신고 도서 정보실. 이 학교 2학년 학생 7명이 모여 도서 ‘우아한 거짓말’을 가운데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독서토론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어쩌다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책 그만 읽고 공부나 해라”는 핀잔을 듣기 쉬운 게 현실이지만 이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독서토론만큼 자신들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활동이 없다는 것이다. 또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법 등 상황에 맞게 말하는 표현력도 키웠다. 최혜원양은 “전에는 친구들과 아이돌 가수 이야기만 했지만, 책을 주제로 대화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제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자발적으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인희양은 “중학교 때까지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독서토론을 시작한 뒤로 책 읽기를 즐긴다”고 말했다. 김지연양 역시 “어릴 때 억지로 읽은 책은 물론이고, 오로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제목이나 핵심만 달달 외운 책은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면 독서토론을 했던 책은 내용이나 읽을 때 받은 느낌,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 작가가 살았던 시대상 등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책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사회문제나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키싱 마이 라이프’를 읽고 ‘낙태문제’에 관해 토론했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며 ‘사형제도’에 대해 돌아보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신가람양은 “토론에서 말한 것을 글로 쓰면 ‘논술’이 된다. 독
    서토론을 꾸준히 하면 굳이 돈을 내고 논술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독서토론은 인성(정서) 교육적인 측면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에 공감하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윤예민양은 “독서토론을 하다 보면 ‘나는 이 책과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했다’는 식으로 제 경험을 이야기하게 된다. 또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얻는 정서적 이점이 무척 크다”고 전했다.

    독서는 공부에 방해된다는 편견과 달리 이들은 학교 공부에서도 독서토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다솔양은 “배경지식이 늘면서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져 언어영역 문제를 푸는 게 수월해졌다”고 했다. 박다정양 역시 “전에는 ‘함축적인 시어를 찾아라’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훈련을 한 덕분에 문제를 푸는 힘도 커졌다”고 전했다. 이들을 지도하는 김명은 교사는 “독서토론을 하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글을 읽더라도 중심내용을 빨리,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는 시험을 볼 때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다른 교과 공부에도 도움을 준다. 최기재 전라고 교사는 “독서토론에서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할 때 다른 교과에서 배운 모든 내용을 활용하게 된다. 예전에 읽은 책, 감명 깊게 본 영화, 신문, 통계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모든 교과영역 공부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임영규 진광중 교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장)는 “독서토론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자기 주도적인 활동은 학생들의 학업 성적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깊이 있고 폭넓은 공부가 필요한데 이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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