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6.18 09:49

"밥 주세요" 암탉 주위에 모여든 병아리들 '푸근한 정' 느껴지네
윤기 자르르 닭, 보들보들 병아리
묘사의 달인다운 정교함 돋보여
변상벽, 어진<임금의 초상화> 두번 그린 실력파

  •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조선 시대 화가인 변상벽이야. 고양이를 어찌나 잘 그렸는지‘변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 닭도 정말 잘 그렸지? 변상벽은 두 번씩이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그린 실력파였단다. 그가 남긴 고양이나 닭 그림을 보면 얼마나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알 수 있어.

  • 변상벽, ‘암탉과 병아리’, 비단에 담채, 94.4X44.3cm, 국립중앙박물관
    ▲ 변상벽, ‘암탉과 병아리’, 비단에 담채, 94.4X44.3cm, 국립중앙박물관
    ● 엄마, 저 주세요
    닭과 병아리들은 모두 아래쪽에 있어서 안정감이 느껴져. 따뜻하고 넉넉한 엄마의 정을 나타내려면 이런 구도가 딱 맞지.

    먼저 병아리부터 세어 볼게. 열네 마리가 다들 아주 귀엽게 생겼어. 이 녀석들 하는 짓 좀 봐. 정말 가지가지야. 음, 역시 먹이 앞에 가장 많이 모였군. 먹이가 어디 있느냐고? 암탉의 입을 봐. 작은 벌 한 마리를 물었잖아. 꽃에 앉았다가 암탉에게 재수 없게 잡힌 벌이지.

    벌 주위로 모여든 병아리는 모두 여섯 마리야. 동그랗게 둘러서서 암탉 주둥이만 뚫어지게 쳐다보네. 눈도 개구리 알처럼 동그래.‘엄마가 누구부터 줄까?’ 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천진스럽지. 병아리 색깔도 좀 봐. 오른쪽부터 진한 색, 옅은 색, 진한 색, 옅은 색으로 계속 변화를 주었어. 그래야 그림이 단조롭지 않거든.

    ●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암탉의 배 밑을 좀 봐. 병아리가 세 마리나 숨었어. 어, 재미있는 녀석이 있네. 눈치 챘니? 그래, 가운데 있는 병아리야. 배도 부르고 햇살도 따뜻하니 눈을 감고 조는 중이야. 아니, 혹시 어디가 아픈지도 몰라. 병든 닭도 저렇게 깜빡깜빡 졸거든.

    깨진 접시 위에는 병아리가 두 마리 있어. 왼쪽 병아리는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쳐다보고, 오른쪽 병아리는 막 입을 대네. 서로 반대되는 동작으로 균형을 맞추었지. 둘 다 하늘을 쳐다보거나 땅을 봤어 봐. 아무래도 그림이 단조롭지 않겠니. 

    그림 오른쪽에 있는 이상한 바위를 보면 양반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양반들은 저런 돌로 뜰을 장식하곤 했지. 하지만 돌은 대충 그렸어. 덕분에 암탉의 정교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보여.  

  • 변상벽, ‘암탉과 수탉’, 종이에 채색, 30.0X46.0cm, 간송 미술관
    ▲ 변상벽, ‘암탉과 수탉’, 종이에 채색, 30.0X46.0cm, 간송 미술관
    ● 어머니의 마음
    이번엔 엄마 닭 좀 볼까. 통통하게 살이 올랐지. 푸근한 정이 물씬 풍겨. 털은 어때?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지? 쓰다듬으면 손이 쓱 미끄러질 것 같아. 실제로 닭털에는 지방질이 있거든. 그래서 비가 와도 잘 안 젖지. 화가는 윤기 있는 닭 털을 절묘하게 표현했어. 보드라운 병아리 털과 함께 이 그림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지.

    이 그림에서는 암탉만 나오지만 실제로는 수탉도 암탉과 함께 지내. ‘암탉과 수탉’이라는 그림을 봐. 여긴 두 마리가 함께 나오잖아. 수탉 역시 병아리를 돌봐. 개나 고양이가 다가오면 소리 내어 알려 주기도 하고, 날개를 크게 펼쳐 겁을 주기도 하지. 아기 키우는 일에도 남자 여자가 따로 없잖니. 그런데 왜 ‘암탉과 병아리’에서는 암탉만 나오느냐고? 화가는 특히 엄마의 모성애를 강조하고 싶었나 봐. 엄마 닭만 나오니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