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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모의고사 19번 문제 좀 풀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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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강남 서초구의 한 재수(再修) 전문학원 강의실에서 생물Ⅱ 수업이 끝나자 강사 앞으로 서너 명의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쉬는 시간 10분간 채 물어보지 못한 학생들은 다음 수업 벨이 울리자 아쉬운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수강생 김모(18)씨는 "하루 종일 학원 수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로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물어본다"고 했다. 김씨는 올 초 서울대 공대에 합격했지만, 의대를 가기 위해 휴학하고 재수학원에 다니는 이른바 '반수생(半修生)'이다.
하루 14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그는 자신을 '고4'라고 불렀다. 김씨는 "미래가 보장되는 의대에 갈 수 있다면 1년 다시 공부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친구들 중에 'SKY'(서울대·고대·연대)에 붙어놓고도 의대나 취직 잘되는 과에 가려고 '반수'하는 애들이 엄청 많다"고 전했다. 이 학원의 40개반(2200명) 중 15개반(800명)이 '반수생'들을 위한 반이다.
◆"반수생 작년보다 15% 늘어"
대학의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6월은 재수학원에 '반수생'들이 몰려오는 시기다. 반수생들은 보통 1학기를 다닌 후 휴학하고 재수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
올해는 예년보다 반수생이 급증하는 추세다. 자체 시험으로 수강생을 선발하는 D학원의 경우 작년 반수생 강의 경쟁률은 10대 1에 못 미쳤지만 올 6월은 14대 1에 달했다. J학원 역시 지난해보다 반수생이 15%가량 늘었다. 대성학원 이영덕 학력개발소장은 "지난해 수능이 쉽게 나와 하향지원했던 상위권 학생들이 대학에 적(籍)은 걸어두고 반수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SKY대'나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가려는 반수생이 주였지만 최근에는 명문대에 붙어놓고도 취직이 잘 되는 의대·한의대 등에 가려 다시 재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수능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모두 1등급인 최상위권인데도 재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D학원 김명준 부원장은 "반수생반 수업에 들어가서 'SKY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60~70%가 손을 들더라"며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한의대 지망생"이라고 전했다.
◆'징역 6개월, 벌금 1500만원'
고려대 생명공학과를 휴학하고 서울의 재수학원을 다니는 반수생 이모(18)씨는 학원비·생활비 등으로 매달 200여만원을 쓴다. 집이 지방이어서 하숙비만 월 100만원씩 든다. 이씨는 "재수생들은 1년간 학원에 '감금'돼 공부만 하고 돈은 3000만원씩 들기 때문에 '징역 1년, 벌금 3000만원 신세'라고 표현한다"며 "반수는 그 절반이니 '징역 6개월, 벌금 1500만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몇개월의 수험전쟁을 치러야 하지만 기자가 만난 반수생들은 모두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D학원에서 만난 반수생 이씨는 "취업 잘되고 미래가 밝은 학교·학과가 많으면 왜 반수생이 생기겠느냐"며 "지금 당장 힘이 든다고 (재수를) 안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再修공화국] "강남 半修학원생 60~70%가 SKY 대학생"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再修공화국] [上] 대학 다니다 학원으로
서울대 공대 합격하고도 의대 가려고 '고4' 자청
"재수는 징역1년 반수는 6개월 돈 많이 들어도 아깝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