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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오정해(38)씨의 아들 김영현(12·관양초 6)군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다. TV 프로그램에 어머니와 함께 출연해 공부, 운동, 피아노에 성격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준 뒤 여학생들 사이에서 '리틀 이준기'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는 서편제 오정해보다 영현이 엄마로 불린다는 국악인 오정해씨를 만나 자녀 교육법에 대해 들었다.
◆아이가 최선의 노력을 했다면 확실한 보상 필요
"사실, 주변에서도 아이 교육법에 대해 많이 물어요. 그런데 딱히 교육법이랄 것이 없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배운 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거죠."
오정해씨는 국악을 위해 중학교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면서 또래보다 철이 빨리 들었다. 부모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고 공경하는 마음은 배려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가장 먼저 가르친 교육이 인사와 존칭어다. 그녀는 "뭐든 기초공사가 중요하다. 인간 됨됨이의 시작은 인성이다. 어린 시절부터 탄탄하게 인성교육을 해두면 책임감 있는 아이,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고 했다.
"외동이지만 늘 부족하게 키웠죠. 아이 스스로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말 할 때까지 애써 모른 척 했어요. 그러다보니 본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더라고요."
오씨는 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번도 없다. 5학년까지는 인성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부모와 거리감을 갖고 친구들과 마음껏 우정을 쌓지 못하는 게 꺼림칙해서다.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준 적도 없어요. 무조건 스스로 알아서 하게 했죠. 자기 할 일이 끝나면 신나게 놀게 했어요. 하지만 놀 만한 친구들은 모두 학원을 다녀서 노는 게 이상한 때가 오더라고요. 그게 바로 5학년이었죠." -
이제는 중학교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때도 '공부하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1등 엄마 작전을 썼다.
"'아들이 1등하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1등 엄마가 되더라. 엄마도 1등 엄마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사실 기대 안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애가 아니니까. 솔직히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해왔다. 그래서 공부에 취미를 붙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작전은 전교 1등 엄마였다. 이 방법 역시 성공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영현군은 더욱 분발했다. 하지만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 영현군은 "괜히 전교 1등까지 했다. 왠지 계속 1등해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계획된 생활을 해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오씨의 말이다.
"그날 이후 계획표를 짜서 생활하더라고요. 날짜별로 공부할 것들을 정리해두고 그 아래에 '이대로만 했다면 오늘은 휴식을 갖자', '그래 영현아 오늘은 좀 쉬어도 돼' 이런 식으로 공부 리듬을 타더라고요. 아이가 공부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최선의 노력을 다한 아들에게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과정을 높이 샀다. 시험기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엄마와 아빠가 신나게 함께 놀아준 것. 오씨는 "공부하면서 힘들고 짜증이 나더라도 그 뒤에 오는 달콤함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컨트롤을 잘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는 그 어떤 보상도 없다"고 말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감 반드시 배워야
인성, 공부, 운동, 학교생활 어디서도 걱정을 끼치지 않던 아들이 얼마 전 오씨를 당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어요. 한 달간 고민을 했죠. 저는 쿨한 엄마라고 생각해서 '그래? 하고 싶은 거 해' 이럴 줄 알았는데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공부도 잘하니까 부모로서의 기대도 있고 희망도 있었다. 그런데 야구학교를 가겠다니… 그녀가 꿈꾸던 아들의 미래가 사라져버렸다. 오씨는 "부모가 원하는 게 아이의 행복 아닌가. 결국 승낙했지만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정을 지었기 때문에 후회하거나 바꾸고 싶을 때 공부를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이해시켰다. 야구와 공부 두 가지 모두를 잘해야 인정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내심 아이가 포기하겠지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영현군이 또 전교 1등을 한 것. 원하는 것을 얻고자 밤늦게까지 야구 연습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도 했다. 오씨는 "운동이나 음악·미술 등 예·체능은 다치거나 재능이 없으면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포기한 후에는 갑자기 공부로 돌아서기 힘들다. 하지만 공부를 꾸준히 해두면 선택의 순간이 와도 큰 무리가 없다. 부모의 역할이 그런 것 같다. 강압적으로 뭔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메뉴를 펼쳐주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잡아주는 것. 그것까지가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필요하죠.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만약을 대비하는 역할만 해주세요. 부모의 역할이 그 이상이 되면 아이는 부모에게 의지하려 들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죠. 아이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선택과 책임은 아이의 몫으로 돌려주세요. 그리고 부모는 마음으로 응원하는 진정한 지원군이 되어주세요."
"노력엔 달콤한 대가를, 선택엔 책임 따르게 해"
김소엽 맛있는공부 기자
lumen@chosun.com
공부·운동·성격 고루 갖춘 엄친아 키운 국악인 오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