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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
5월 10일, 한일 지식인 200여명은 한일 병합 100주년을 맞아 서울과 도쿄에서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학자를 중심으로 문인, 언론인, 법조인 등이 함께 했다. 앞으로 서명자를 500명 이상씩 추가로 받아서 그 결과를 양국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의원들도 한국과 일본의 공동 역사에 대한 시각을 정리하려 한다. 먼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한일과거사 정리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고, 다음으로 광복절이 있는 8월에 한국과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일본 국회의원들이 결의안을 직접 통과시키는 것이 계획돼 있다.
◆공동 성명의 내용
크게 3가지인데, 두 가지는 한일병합의 체결 내용과 절차이고, 한 가지는 한일회담의 조약 해석 문제이다. 첫째, 일본의 한국 병합 과정은 불의 부당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진압한 제국주의 행위이다. 둘째, 병합의 근거인 병합조약도 불의 부당하고 조약의 체결 절차와 형식이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셋째, 1965년 한일국교수립 때 체결된 양국 관계의 기본에 관한 조약 제2조인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원천무효(already null and void)'에 대한 해석은 한국 측의 견해에 동의한다. 일본은 '병합조약 등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지로 맺어졌던 것으로 체결 시부터 효력을 발생하였지만, 1948년 대한민국 성립으로 무효가 됐다'고 해석하고, 한국은 '과거 일본 침략주의의 소산이었던 불의 부당한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무효'라고 해석해왔다. -
◆공동 성명 발표의 역사적 의의
그동안 대부분의 일본 정부나 정치인들은 한일병합 조약이 합법이라 주장해왔다. 가장 반성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조약은 합법적이었으나 내용은 부당했다는 맥락의 해석만 해왔다. 이번 발표는 일본 주류 역사학계가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을 한국 입장에 최대한 가깝게 동조한 것으로 일본인 참가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번과 같은 한일 지식인들의 공통된 역사 인식이 많을수록 화해와 협력을 위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번 성과는 한일역사공동위원회도 해내지 못한 것을 다양한 그룹의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것으로서 사회 전반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한계점으로는 첫째,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불법적(illega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고, 국제법상으로 논란이 많은 '불의, 부정, 부당, 원천무효' 등의 단어가 사용됐다. 둘째, 서명에 참가한 한국인들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지식인 집단이라면, 일본은 비판적 지식인이 중심이 됐다. 출발의 의의는 높지만 이번 공동성명으로 일본의 지식인, 정부, 국민들의 실질적 의식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를 반성하는 외국의 사례와 한일 우호관계 성립 방안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죄나 식민지 범죄에 관해 최근 국제법 학계에서 다양한 노력이 나오고 있다. 1993년은 미국이 하와이 왕국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 상원은 100년 전에 하와이를 강제 병합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하와이 병합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발의한 일본계 미국인 국회의원은 '역사는 바꿀 수는 없어도 책임은 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동 대지진 때 한국인 대량 살해, 강제 동원 노동자·군인·군속 등에 대한 위로와 의료 지원에 일본 정부와 기업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는 일본이 변화해가기만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일제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재판을 국제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과 국제법에 대한 융합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제국주의 모습에 대한 고민 -
세계화 시대에 제국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군인의 무력이 사라졌지만 경제적 예속이나 착취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는가? 세계적 다국적 기업을 가지고 있고, 10위 권 안팎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우리나라는 제3세계로부터 기업 활동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행태가 있다고 지적받고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맥도널드나 스타벅스커피점 앞에서 상징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1970년대에 일본은 마산과 창원에 다수의 기업들이 진출해서 활동했는데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그 기업들의 반인권적이고 반환경적인 횡포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경제 이외의 일상생활 속에서 제국주의적 모습이 혹시 있다면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0~70년대에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일본인 기생관광객을 적극 유치했었다. 시인 곽재구는 그것을 〈유곡나루〉라는 시로 표현했고, 가수 정태춘은 〈나 살던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했다. 이제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당시 일본인 관광객 입장이 돼 동남아시아에서 활보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자들의 성을 상품화하는 현실을 남성이나 권력자들이 여성들의 몸을 식민지 삼는 제국주의적 행위로 비유하기도 한다.
[시사 이슈로 본 논술]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의 역사적 가치
'한일병합 조약은 부당'… 화해·협력 위한 첫걸음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