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빠들이 사는 법- 프렌디] '잘 나가는 아빠'보다 '잘 키우는 아빠' 될거야
특별취재팀
기사입력 2008.12.15 03:15

<1>나도 브래드 피트처럼
friend+daddy·친구 같은 아빠
'가족=행복' 의식 변화… 맞벌이 확산도 한몫
퇴근후 놀아주고 휴일엔 요리… 직장도 옮겨
노르웨이 "육아는 권리"… 출산후 휴가 보장

  • 아내가 아기를 낳으면 길어야 3일 쉬는 우리나라 아빠들에게 '아이 키우는 아빠'는 아직은 남의 얘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GNP)이 우리보다 많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아빠의 육아권'을 주장하는 남성들과 이를 정책으로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빠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 출산율이 높아지고, 이혼율도 낮아진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아빠의 육아참여는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며 동시에 좀 더 안정적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보건복지가족부의 후원으로 '21세기 아빠들이 사는 법'을 3회에 걸쳐 기획한다.

    "맛있겠지? 조금만 기다려."

    지난 6일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의 유르수 마을. 이 나라 최대 신문사인 베게(VG)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프레데리크 킬랜더(Kilander·34)씨가 아침 식사로 오트밀 죽을 끓이며 딸 투정을 받아주고 있다. 아들 요르겐(5), 딸 오스네(3)의 토요일 아침 식사 준비는 언제나 아빠의 몫. 그는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각각 4개월간 아버지 휴가(father leave)를 썼다. "굉장한 경험이었죠. 아이들이 아프거나 고민이 있을 때 엄마가 아니라 저에게 달려올 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중국 상하이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일하는 션 후와이 드어(48)씨는 벌써 엿새째 실밍(7·아들)과 치엔 런(6·딸)의 오후 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베이징 출장 중인 회계사 아내를 대신해 유치원에서 두 아이를 데려오고 밥을 먹인 뒤 함께 놀아준다. "애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니 행복할 뿐이죠. 조금만 더 크면 아빠랑 노는 걸 재미없어 하겠지요." 그는 아내가 한 달 평균 10일씩 출장 가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다.
  • 토요일이었던 지난 6일 오후 프레데리크 킬랜더씨가 집 앞에서 아들 요르겐(앞), 딸 오스네와 썰매를 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요리법을 담은 자신만의 쿠킹북까지 갖고 있는 그는 파스타, 피자, 생선구이 등을 자주 만든다. /오슬로=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 토요일이었던 지난 6일 오후 프레데리크 킬랜더씨가 집 앞에서 아들 요르겐(앞), 딸 오스네와 썰매를 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요리법을 담은 자신만의 쿠킹북까지 갖고 있는 그는 파스타, 피자, 생선구이 등을 자주 만든다. /오슬로=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일도, 육아도 완벽하게! '브래드 피트'처럼?

    일단 남성들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렌디'(프렌드+대디)라는 신조어로 부르면 딱 좋을 젊은 아빠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부성(父性)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내고 있다.

    노르웨이는 그 선두에 있다. 노르웨이 남자들은 "육아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아버지의 권리"라고 믿는다. 정부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출산 후 8주간의 아버지 휴가를 노르웨이 아버지의 95%(2007년 기준)가 사용했다. 지난해엔 현직 장관이 육아휴직을 신청해 화제가 됐다.

    전통 농업국가라 성별 역할이 분명했던 호주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맞벌이 인구가 60.4%(2005년 기준)에 이르고 남성보다 소득이 높은 여성들이 늘어나자 아버지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스타일의 '오지 대디(Aussie daddy·호주 아빠)'는 줄고,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핸즈 온 대디(Hands-on daddy·양육하는 아빠)'가 급증하고 있다. 매콰리대 앨런 라이스(Rice) 교육정책경영학장은 "20년 전만 해도 호주 남자가 요리를 하거나 유모차를 미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요즘 백화점에 가면 화장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들을 흔히 볼 수 있다"며 웃었다.

    한국보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는 최근 남성들을 위한 육아잡지 창간이 잇따르고 있다. '프레지던트 패밀리'(2005) '닛케이 키즈'(2005) 'ODEANS'(2006) 'FQ JAPAN'(2007) 같은 잡지에는 조니 뎁, 기무라 다쿠야, 브래드 피트처럼 일도 잘하면서 육아에도 적극적인 스타들이 등장해 다분히 이상적이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아버지 상을 심어주고 있다. "20대 일본 여성들은 '이케맨(잘 나가는 남자)'보다 '이쿠맨(육아를 하는 남자)'을 결혼상대 1순위로 여긴다"는 말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 잡지다.

    육아의 고통까지도 아버지의 행복한 권리

    그러나 프렌디 출현의 가장 큰 동력은 아버지 자신들의 의식 변화다. '부성(父性)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

    로드릭 매키넌(Mackinnon·43)씨는 작년까지 호주 최대 로펌인 블레이크도슨의 기업전문변호사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표를 썼다. 지금은 유명 철강기업 블루스코프의 계약직 기업변호사.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수입은 로펌 시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키넌씨가 로펌을 뛰쳐나온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항상 마음이 허전하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죠. 제일 먼저 주말을 통째로 앗아가는 골프를 그만뒀어요. 그리고 진지하게 '다른 삶'을 모색했죠." 세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그만뒀던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요인이었다.

    도쿄 시부야의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토 히로다카(佐藤博隆·40)씨는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가는 아버지 때문에 나의 유년시절은 매우 쓸쓸했다"고 회상한다. 일본 사회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사토 집안에서 자란 그가 결혼 후 육아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도 "내 아이에게는 그런 우울한 추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마리(2)가 갓난아기였을 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마다 천 기저귀를 100장씩 접었다. 요즘도 딸의 목욕과 산책, 그림책 읽어주기는 그의 몫이다. "내가 육아와 가사를 함께하면 아내의 시간이 절약되고 그만큼 부부가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죠. 경제가 어렵고 삶이 버거울수록 가족의 결속은 더욱 중요합니다."

    프렌디

    친구를 뜻하는 '프렌드(friend)'와 아빠를 친근하게 부를 때 쓰는 단어 '대디(daddy)'를 합친 말. 지난 2007년 여성가족부가 '친구 같은 아빠', '가족과 함께하는 아빠'라는 개념으로 만든 용어다.
  • ▲ 친구 같은 노르웨이 아빠 프레데리크 킬랜더씨의 가정. 그는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 베게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1남 1녀를 키우고 있다. /최승현 기자
  • ▲ 친구 같은 노르웨이 아빠 프레데리크 킬랜더씨가 아이들과 썰매를 타며 놀고 있다. 그는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 베게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1남 1녀를 키우고 있다. /최승현 기자
  • ▲ 친구 같은 노르웨이 아빠 프레데리크 킬랜더씨의 가정. 그는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 베게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1남 1녀를 키우고 있다. /최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