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로 본 논술] 대학 시간 강사의 처우 개선은?
강방식 동북고 교사·EBS 사고와 논술 강사
기사입력 2010.05.20 03:22

학맥 잇는 도제식 채용 버리고 민주적 절차 정착돼야

  • ◆대학 시간 강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통합위원회의 노력

    사회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사회통합위원회가 대학 시간 강사 문제 해결에 나섰다. 시간 강사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시간 강사를 강좌 교수, 기간제 교수, 혹은 계약제 교수로 바꿔 방학 때 월급을 지급하고, 4대 보험 혜택을 주자는 방안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로 주당 12시간 강의를 하는 5년 이상 경력의 시간 강사가 우선 대상이 된다. 현재 4년제 대학 시간강사 7만 2천 명 중에 5천 명이 혜택을 받는 것으로 전체 시간강사의 7% 정도다. 여기에 대해 대학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반대하고, 시간 강사들은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대안이라고 비판한다.

    ◆시간 강사 문제의 현실

    2007년 9월부터 국회 앞에서 텐트치고 시간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과 법적 지위 개선을 요구하던 비정규직 교수들이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9년에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32년'은 1977년 유신체제에서 지식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시간 강사가 교원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당했는데 이때부터 시간 강사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를 담는다. 이 책에는 시간 강사의 현실을 자조하거나 해결책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보면 시간 강사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대학 수업의 절반은 유령의 몫' '하청 노동자, 파견 노동자로 착취당하는 시간 강사' '눈물조차 말랐다. 시간 강사의 끝없는 절망' ' 굶주리는 시간 강사, 말라죽는 지역 학문' '우리는 지성의 전당에서 인간성 파괴를 배운다.' '우리에게 연구실을, 제대로 된 강사료를 지불하라.'등.

    2003년 서울대의 어느 시간 강사가 현실을 비관해 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시간 강사 문제는 평등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문제는 결국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발표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차별을 시정하고 시간 강사의 법적 지위 개선을 요구했지만 국회의원 시절 시간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자는 법안을 발의했었던 정치인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임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실정이다.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법에서 박사학위 소지 시간 강사는 예외로 하면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계속 열악한 조건 속에서 시간 강사를 하고, 전체 시간 강사의 60%를 차지하는 박사과정 수료 및 석사학위 이하의 시간 강사들은 2년을 채운 경우 여지없이 해고됐다.

    ◆시간 강사 문제의 근본적 원인

    첫째, 대학 교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에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대학생 수가 급증하고, 지방을 중심으로 신설 대학들이 많아지면서 대학 교원의 수가 갑자기 많이 필요해졌다. 이 때 많은 시간 강사들이 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대학원으로 진학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대학은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대학 재정을 늘리려 했고, 대학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맥을 잇기 위해 외국어 시험을 없애고, 시험 대신 간편한 면접으로만 뽑는 등 대학원 입시를 간소화했다. 사회적으로는 85%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이 많아졌고,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이 청년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시간강사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덩달아 많아졌다.

    둘째,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교원임용시스템을 운용한다. 전임교원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임금으로 대학 강의의 60% 정도를 시간 강사에게 맡길 수 있다. 시간 강사의 80% 이상이 다른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월평균 소득 40만원 정도를 받음으로써 고학력 빈곤층을 형성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복지와 교육을 담당한 정부가 손을 아예 놓고 있다.

    셋째, 폐쇄적으로 진행되는 교수 임용 과정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실력 있는 교수들을 뽑는다고 공개 채용하지만 아직도 중세시대의 도제식으로 임용된다. 전임 교원들은 최고의 권위를 누리면서 시간 강사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시간 강사들은 전임 교수님만 잘 모시면 최고의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불합리한 시간 강사 처우를 개선하려는 공개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시간 강사 문제의 해결 방안

    비정규직 시간 강사의 문제는 삶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인권적 차원에서 우선 접근해야 한다.

    시간 강사들의 신분 불안은 대학생들의 학습권과 시간 강사의 수업권을 심각히 침해하여 대학의 수준과 사회의 지적 수준을 낮춘다. 이는 결국 정보화 사회에서 필요한 고급 콘텐츠 생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정부와 대학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고급 인력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국가의 품격이 낮아지는 상황이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는 사회통합위원회의 개선 방안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학 시간 강사의 지위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법 개정이라고 주장한다. 교원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보가 중요한데 정부와 대학이 적절한 수준에서 나눠 부담해야 한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졸업생들의 수준이 높아야 하는데, 이들의 교육을 대부분 담당하는 시간 강사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언감생심이다.

  • 다음으로, 대학의 전임교원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전임교원만 계산했을 경우 35명 정도이고, 시간 강사를 포함하면 18명이다. OECD 수준인 15명으로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해결책들은 대학에 지나친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시간 강사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하고 수업할 수 있는 연구단체를 만드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연구 공간과 연구 기금을 정부와 기업에서 지원해주고, 연구결과물들은 국정 운영의 아이디어나 기업의 경영 콘텐츠로 활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하고 민주적인 교수 채용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바늘구멍을 찾아 들어가려는 시간 강사들에게 청탁이나 뇌물 등을 은근히 요구하고 학맥을 만들기 위해 조폭 같은 충성조직을 운영하는 교수들의 중세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혁파되지 않고서는 시간 강사 문제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현상만 지속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