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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광해군 때 서울에 이기축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기축은 효령대군의 8세손으로, 홀아비가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기축이 충청도 홍주 땅에서 머슴살이할 때의 일입니다. 집주인은 김씨 성을 가진 양반이었는데, 이기축은 황소처럼 힘이 좋아 몇 사람분의 일을 하고 성실해 주인의 눈에 금방 들었습니다.
주인 부부에게는 예쁘고 착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은 부모에게 머슴인 이기축과 혼인하겠다고 졸랐습니다. 부모가 반대해도 고집을 꺾지 않자, 화가 난 부모는 딸을 집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딸은 집에서 나와 이기축과 부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로 올라가 서대문 밖에 주막을 차리고 술과 밥을 팔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막으로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선조 임금의 손자인 능양군과 이귀·김유·이괄 등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포악한 정치를 하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기축의 아내는 손님들에게 가장 좋은 술과 안주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은잔에 술을 가득 채워 능양군에게 바쳤습니다. 술자리를 끝낸 그들이 술값을 내려고 하자, 이기축의 아내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대접한 걸로 하겠습니다.”
능양군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처음 온 손님에게 술값을 받지 않는 주막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이기축의 아내가 ‘맹자’라는 책을 내놓으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다녀오실 데가 있습니다. 어제 온 손님 가운데 제가 은잔에 술을 따라 드린 분을 기억하시죠? 그분을 찾아가서 글을 배우러 왔다고 말하고, 이 책의 다음 대목을 펼쳐보이십시오. 그리고 이 대목이 무슨 뜻인지 가르쳐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분이 누가 이런 일을 시키느냐 물으시면, 아내가 시켜 왔다고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그만 물러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기축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날 처음 뵌 분인데, 어디 사는 줄 알고 찾아가겠소?”
“그분의 집은 사직골에서 제일 큰 기와집입니다. 대문을 두드리면 하인들이 나올 것입니다. 주인 나리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성을 내며 당신을 쫓으려 할 테지요. 그때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소란을 피우면 어제 그분이 나와서 들어오라 하실 것입니다.”
<하편에 계속>
인조반정의 피 묻은 칼을 씻었던 정자 '세검정' -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정자로, 서울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돼 있다. 옛날부터 워낙 유명한 정자여서 신영동·부암동·홍지동·평창동 등 정자 근처에 있는 지역을 세검정이라고 부른다. 세검정 지역은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꼽혔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이귀·김유·이괄 등이 인조반정에 성공한 뒤 이곳의 정자 아래로 흐르는 물에 피 묻은 칼을 씻었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기록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고 이 부근에 ‘총융청’이란 병영을 설치하면서 군인들의 쉼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조 때에는 1748년(영조 24년) 군인들의 쉼터로 정자를 짓고 ‘세검정’이란 현판을 달았다는 것이다. 이 정자는 1941년 근처에 있는 종이 공장에서 종이를 말리다가 화재를 내어, 주초석 하나만 남고 몽땅 타 버렸다. 그 뒤 서울시에서 1977년 옛 모습을 살려 다시 지었다.
[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인조반정과 세검정(상)
아내는 '맹자'를 건네주고 능양군에게 가보라며…
"이 대목의 뜻을 가르쳐 달라 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