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거짓은 모두 나쁜 것인가, 진실은 항상 착한 것인가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5.13 02:58

우리 의사 선생님

  • 영화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만든 '진실'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우리 의사 선생님'은 한 남자의 실종사건으로 시작된다. 의사 가운만 논바닥에 던져놓고 어딘가로 사려져 버린 시골 의사 선생님 이노(쇼후쿠테이 츠루베). 소탈한 미소를 가진 이노 선생님의 실종은 카미와다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추측에 의지해 한 남자의 정체를 어설프게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원래 이노는 카미와다 마을의 우상 같은 존재. 죽음을 앞둔 노인을 등 한 번 토닥거려 간단히 고쳐내고, 몸이 불편한 환자를 직접 집으로 찾아가 밤새 정성껏 간호해준다. 그는 절대 거만 떨지 않고, 허세도 부리지 않으며 진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한다. 아무도 선뜻 오려 하지 않는 낙후된 시골 마을에, 제 발로 직접 찾아와 밤낮 없이 의료 행위를 하는 이노는 누가 봐도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겉모습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성품의 이노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짐도 제대로 싸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노를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노 선생님의 정체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마을 사람들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노는, 점점 마을 사람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인물로 바뀐다. 경찰은 이노가 의사 면허증도 없는 '가짜 의사'라고 말한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는 어떻게 이 마을에 오게 되었으며, 왜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진 것일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영화는 이노에 얽힌 진실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한 겹 한 겹 풀어나간다. 이노를 의심하기에 앞서, 이노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경쾌하게 나열된다. 이노가 이곳에 오기 전, 카미와다 마을은 노인들만 득실거리는 죽어가는 마을이었다. 노인들은 건강을 보살펴줄 의사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진료를 부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노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건강한 삶을 되찾았고, 그들에게 친절한 의사 이노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된다. 이노는 병을 고쳐주는 의사를 넘어 고독과 외로움을 어루만져주는 마음 치료사에 가깝다.

    어찌 보면 이노를 훌륭한 의사로 만든 것은 그런 의사를 간절히 원해온 마을 사람들 자신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외치지만, 사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카미와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노 같은 의사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우연히 마을에 흘러들어온 남자를 의사로, 영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 속에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노에게 의술을 배우기 위해 도시의 풍족한 삶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 젊은 의사 소마(에이타)는 이노에게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한다. 이노는 소마에게 처음으로 진실을 고백한다. 사실은 자신이 진짜 의사가 아니며 너에게 가르쳐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마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노가 진실을 이야기할수록, 소마는 이노에 대한 존경심을 키워간다.

    ◆의료인이 진정으로 갖춰야 할 덕목

    '우리 의사 선생님'에는 세 명의 의사가 등장한다. 환자의 마음까지 보살펴주는 이노와 질병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 도시형 의료에 환멸을 느낀 젊은 의사 소마, 원래 카미와다 마을 출신이지만 지금은 대도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의사 리츠코(이가와 하루카). 영화는 이 세 명의 의사를 통해 의사가 진정으로 갖춰야 할 정신은 무엇인지, 또 환자들이 의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녀는 '진실'에 관한 보편적인 화두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정의'에 관한 화두를 물고 늘어진다. 한낱 의료기 외판원에 불과했던 이노는 정말 돈과 명예를 위해 시골 마을 의사로 정착한 것일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거짓말의 성에 둘러싸여 있는 이노가 사실은 이 마을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고, 진정한 영웅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환자 입장에서 생각했고, 진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암에 걸린 카즈코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기 싫다고 말하자 이노는 환자와 가족, 두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가족에게 그녀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옳을까, 환자의 거짓말에 동참해주는 것이 옳을까. 그의 실종은 사실 가짜 의사라는 진실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갈등을 이겨내는 것이 너무나도 버거웠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수시로 바람에 일렁이는 풀과 나무, 드넓은 논밭을 비추며, 사건에서 한발 물러나 진실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평온한 시골 마을을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갖는 기쁨. '우리 의사 선생님'이 추리 구조를 띠면서도 사색의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더 생각해볼 문제

    1. 면허증도 없으면서 버젓이 의사 행세를 한 이노는 도덕적으로 정말 나쁜 사람일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보자.

    2. 암에 걸린 카즈코는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자신의 병명이 위장병이라고 말한다. 이때 의사는 환자의 거짓말에 동조해주는 주는 것이 옳을까, 가족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옳을까?

    3. 시골 마을의 의료 공동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