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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카이스트(KAIST) 캠퍼스의 '나눔관'에 있는 100㎡(약 30평) 넓이 방에는 각 나라 국기가 붙은 냉장고 8대가 있다. 중국·베트남·인도·파키스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기네 전통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꺼낸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 학생들은 같은 냉장고를 쓴다.
지난 12일 낮 이 방은 점심식사를 만들려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막불(25)씨는 통밀을 반죽해 전통 음식 차파티를 만들었고,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학생 시바첸코(21)씨는 팬케이크를 구웠다. 막불씨는 "1년 전만 해도 요리를 할 줄 몰랐는데 카이스트에 와서 주방의 달인이 됐다"며 웃었다.
이곳은 카이스트가 최근 문을 연 '인터내셔널 키친(International Kitchen)'이다. 한국 음식에 적응이 어려운 외국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부엌 공간인데, 음식을 통한 국제 교류의 장이 돼 가고 있다. 3~4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온다는 시바첸코씨는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
대학마다 국제화가 화두(話頭)지만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전체 학생 약 1만명 중 외국인 학생(교환학생 포함)이 70개국 600여명에 달하는 카이스트는 국제화의 수준이 남다르다. 영어 강의나 영어 공용(公用) 구역 같은 단계를 뛰어넘어 외국인 학생의 일상생활과 피부에 와 닿는 '생활 국제화'를 진행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 문지캠퍼스 행정동 7층에는 최근에 마련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슬람의 성지(聖地)인 메카(Mecca) 방향으로 절을 할 수 있도록 카펫이 비스듬히 깔린 이슬람 기도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모로코·가나·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학생 40여명이 매일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종교의식을 치른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킵(30)씨는 "우리는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해야 하는데 이 공간이 생긴 뒤로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서 의식을 치르던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튀니지에서 온 무슬림 메차렉(32)씨는 지난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월) 기간 중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해가 진 뒤에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이 기간 중 저녁 수업과 겹치게 되자 교수가 "충분히 식사하고 들어오라"며 배려해줬다는 것이다.
임용택 카이스트 대외협력처장은 "대학 국제화는 한국 학생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외국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며 "서로가 문화를 배우고 공유하며 상호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화"라고 말했다. -
- ▲ 파키스탄 학생은 차파티(밀가루 음식)를, 우크라이나 학생은 팬케이크를 만들면서 서로 음식을 맛본다. 외국인 학생들이 점심을 만드는 카이스트의 ‘인터내셔널 키친’은 세계 각국의 음식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제화 공간이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KAIST엔 '이슬람 기도실'도 있어요"
대전=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외국인 학생 600여명…
영어공용화 차원 넘어 '생활 국제화'에 주력, 각국 음식 만드는 부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