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경쟁사회의 권력이 '알몸 이벤트' 불러온다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철학, 논술에 딴지 걸다' 저자
기사입력 2010.03.04 03:34

알몸 뒤풀이와사회문제

  • 다른 사람들 앞에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일부 중학교 졸업식에 등장한 알몸 뒤풀이는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그 걱정 중 하나는 '요즘 어린 것들'의 성 의식에 대한 불편함과 관련된다. 그와 같은 불편함은 성(性)을 성(聖)스러운 것으로 이해하고 함부로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신비한 것,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죄로 단정 짓게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아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불장난을 넘어서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로 간주한다. 당연히 이러한 '어른스러운' 가치로는 단순히 웃고 떠드는 이벤트였을 뿐이라는 학생들의 항변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을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형사법적 범죄자로 단정하고, 형사처벌의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해야 하는 다원화 사회에서 기존의 성에 대한 관념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양성이 무질서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전통'이라는 기반을 무시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성적인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 심취해 있다면 이 역시 교육하고 교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주입하는 것만으로, 중학교 졸업식에서 유사한 행위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외형상 동일한 알몸 뒤풀이였을지라도 모든 사건을 동일하게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거기에 관여했던 아이들의 관계와 관련해 본다면 사건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지 않는 이벤트성 행위가 그 하나요, 이 둘이 명확히 구분되는 경우가 다른 하나다. 전자는 기존의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모습으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후자는 그와 같은 가치의 충돌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하는 대상은 오히려 이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친구, 혹은 선후배의 그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권력'이 있다. 매우 절대적이고 야만적인 권력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있었다. 유교적 관습이 뿌리 깊은 동양에서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벌거벗겨 거리로 내모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알몸 뒤풀이가 권력의 횡포와 관련됐다는 점에서 잘못을 전적으로 학생들의 비뚤어진 의식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그들의 권력의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성세대들의 의식, 혹은 제도적 횡포와 맞닿아 있다. 여성 연예인이 자신의 사회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性)적인 거래에 내몰리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사건이 그러하며,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운 겨울 갈 곳 없는 사회적 소수자를 길거리로 내모는 것도 그러하다. 직업적 삶을 지속해 줄 수 있다면 성적인 노리개로 삼을 수도 있다는 의식이나, 성장이라는 목표 앞에 집을 비워주지 않는 사람은 단지 걸림돌일 뿐이라는 생각은 모두 권력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졸업식장의 가해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비뚤어진 의식보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지 모르게 한 우리 사회의 관습과 구조에 오히려 더 큰 책임이 있다.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일찍이 부도덕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훨씬 더 도덕적 삶에 둔감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집단을 위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그러한 행위가 부도덕한 것인 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자각 없이 그릇된 행위를 쉽게 저지른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모든 관계를 경쟁으로 단정 짓고, 경쟁에서 이긴 자가 패배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우리 사회 어디에서고'알몸 이벤트'는 꾸준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