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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면 새로운 비전이 눈에 들어와요."
국내 아랍 관련학과가 설치된 곳은 총 4곳(명지대, 부산외대, 조선대, 한국외대)이다. 아랍어과를 쉽게 볼 수 있는 해외의 이름난 대학들과 대조적이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최영길(59) 학과장은 "아랍을 전공으로 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지만 실상을 알면 그렇지 않다"며 "아랍은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22개국의 광활한 대륙을 일컬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는 중동지역이 부상되던 197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당시 기업들이 아랍지역으로 많이 진출했던 것에 비해 정작 아랍지역을 이해하고 아랍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전문가는 태부족이었다. 기업의 수요에 부응해 제대로 된 전문가를 양성해보자는 계획으로 학과가 만들어졌다.
'전세계인을 친구로, 전세계를 일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위풍당당하게 출발했지만 초기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아랍어를 전공으로 실무를 익힌 교수진을 찾기 어려웠다. 학과가 안정된 것은 1980년대 초반 지금 학과장으로 재직중인 최영길 교수가 부임한 뒤다. 최 학과장은 아랍에 대한 잠재력을 발견, 아랍으로 유학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었다. 국내 몇 안 되는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아랍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고 싶은 마음에 귀국 후 명지대에 열정을 쏟았다"며 "다른 교수진들과 똘똘 뭉쳐 일반대학원에 아랍지역학과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는 등 교육에 힘썼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용인캠퍼스에 있던 학과가 서울로 이전했고, 지금은 명지대 내에서 가장 유망한 학과로 자리잡았다. -
사실 대학에서 4년간 전공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 아랍지역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과 관계자는 "학부생들이 입학하기 전 아랍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뭐든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치고 있다"며 "아랍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벗게 하고자 영상매체를 활용한 수업을 통해 실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랍문화', '아랍어 회화', '아랍정치론' 등은 필수 이수 과목이다.
수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미흡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먼저 교수진들은 아랍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부생들을 위해 방학에도 나와서 무료로 특강을 해준다. 중국어, 일본어 등과 달리 아랍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최 학과장은 "아랍어는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석유 자원시장의 국제 통상어이자, 유엔 6대 공용어 중 하나인 국제 외교어"라며 "비중에 비해 우리나라는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2년 전에는 아랍 현지인 교수도 채용했다.
대학측에서는 교환학생 제도와 단기연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년 2~3명을 뽑아 자매결연을 맺은 아랍지역 대학에서 수학하게 도울 뿐만 아니라 여름방학을 활용해 단기 어학 연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시리아와 파키스탄을 다녀왔다는 2학년 이용욱(25)씨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재학 중에 아랍지역에 다녀온다"며 "그곳에서 수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온다"고 말했다.
아랍지역학과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희소성이다. 대학에 개설된 아랍어학과도 적고, 아랍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도 별로 없기 때문에 자연히 아랍어과 전공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많다. 특히 유가상승이나 중동분쟁 같은 굵직한 사건사고가 있을 때면 아랍어과 전공자들의 수요는 더 많아진다. 기업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먼저 찾아와 우수한 학생을 빼갈 정도다. 기업들의 요청이 많아 재학 중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학생들도 찾기 힘들 정도다.
덕분에 90%를 웃돌 정도로 취업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취업의 질 또한 매우 우수하다. 외교통상부 해외 주재원, 국가정보원 중동 전문가, 관공서 해외 전문가, 아랍어 통역가, 기업의 해외지역 파트 담당자 등 소위 인기 있는 직종으로 진출하고 있다. 학과 성적이 좋고 아랍어를 유창하게 하는 재학생은 졸업 전에 기업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안달일 정도다. LG전자 해외마케팅 중동지역 파트에 재직중인 97학번 졸업생 최승진(32)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아랍어 우수자로 졸업하기도 전에 조기 취업했다"며 "아랍어 능통자가 우리 부서에서 나 혼자뿐이라서 입사 후에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재원으로 뽑혀 다음달에 요르단에 갈 계획이다. 2002년부터 제2외국어로 아랍어과가 선정된 이후에는 중고등학교 교사 배출도 늘고 있다.
이러한 인기 덕분에 해마다 입학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매년 경쟁률이 올라 수시와 정시 모두 10대 1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대개 지원자들은 아랍지역의 비전을 보고 원서를 낸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오직 아랍어학과만을 생각했다는 신입생 신휘(19)양은 "이라크 파병에 참가했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아랍어 통역관의 중요성을 알게 된 뒤 추천을 해줬다"며 "다른 대학의 아랍어학과도 합격했지만 수업이 체계적이고 교수님이 열정적이라는 지인의 말에 끌려 명지대를 택했다"고 했다. 컴퓨터 공학과를 다니다 뒤늦게 아랍지역학과를 들어왔다는 4학년 김진우(27)씨는 "남들과 비슷한 전공을 배운다면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며 "영어가 필수인 시대에서 특색 있는 제2외국어 실력은 남과 다른 차별화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40명 내외의 소수정예라는 점도 특징이다. 교수 1인당 학생 비율이 8명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입학정원을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이용욱씨는 "교수님이 학생 개개인의 안부를 챙길 정도로 직접 마주할 기회가 많다"며 "교수님들이 1대1 면담은 물론 취업상담까지 해준다"고 했다. 동문회도 활발하다.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의 동문회를 통해 선후배간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교수, 졸업생, 재학생 모두 똘똘 뭉쳐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목! 이 학과]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새로운 비전 담긴 블루오션…소수정예의 아랍 전문가 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