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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 전형의 핵심은 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을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성을 보고 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재력'과 '창의성'을 계량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평가 과정의 공정성·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입학사정관제의 '원조' 격인 미국 대학의 입학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입학사정관제는 지원자가 대학이 원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피는, 매우 주관적(subjective)이고 집단적인(collective) 판단 과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의 입학 심사에서 '칼로 무 자르는' 식의 기계적 공정성은 없었다. 다수의 입학사정관이 대여섯 달이 넘는 다단계 토론을 거쳐, 그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가려내는 합의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미국 대학들은 또 대학별로 길게는 근 100년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치면서, 각각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전형 원칙을 발전시켜 왔다. -
◆ MIT "에너자이저처럼… 열정적 학생이 좋아"
MIT: 자발적인 발명과 창조 -
이달 초 보스턴의 MIT 본관 사무실에서 만난 스튜어트 슈밀(Schmill) 입학처장은 "입학사정관제의 요체는 객관적 정보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학생들에게 SAT나 고교 성적 1~2점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가진 특징과 가치에 대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는 점수로 결과가 결정되는 축구나 야구보다, 가이드라인에 따른 여러 판정관의 채점으로 결정되는 체조나 다이빙 같은 경기와 닮았다"고도 했다. 판단 기준은 있지만 일률적이지 않으며,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시도가 더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슈밀 처장은 MIT 출신으로, 입학사정 분야에서만 10년째 일한 베테랑이다.
MIT는 지원자들에게 ▲실제적(hands-on)·기술적 형태의 발명이나 창조 경력이 있고 ▲특정 분야에 비범한 호기심이나 전문성을 갖고 있으며 ▲삶에서 차이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매력 요인(hook)'으로 내세우라고 권한다.
슈밀 처장은 "일상에서 어떤 창조성의 싹을 보여줬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내적 동기가 충만한 학생이라야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원자가 고교에서 어떤 수업을 듣고, 과학전람회 출품 등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눈여겨본다. 형식적인 추천서나 판에 박힌 인터뷰 답변은 과감히 무시된다. 슈밀 처장은 "MIT 선발과정은 '주관적이지만 임의적이지 않은' 점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대학들의 변화 노력을 알고 있지만, 당장 미국 방식을 모방하려 한다면 지원 학생들이 혼란스럽고 불안해할 것"이라며 "각 대학은 먼저 어떤 학생을 원하는지, 그런 학생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독자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
◆ 터프츠대 "자원봉사자처럼… 시민정신 투철해야 "
터프츠: 적극적인 봉사의 시민정신
1852년에 세워진 미 동부의 또 다른 명문사립대인 터프츠대의 기준은 또 달랐다.
2006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터프츠를 '미국의 새로운 아이비리그 대학 25곳'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제니퍼 사이먼스(Simons) 입학 부처장은 "졸업생들이 세계의 정상에 서서, 대학에서 얻은 지적 능력을 공공의 선(善)을 위해 써서 세상에 차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터프츠의 목표"라며 "이런 까닭에 지원자가 '적극적인 봉사의 시민정신(active citizenship of service)'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똑똑한 동시에 흥미로운(smart-interesting) 학생을 원한다"며 "입학사정관의 책상 위에 남들과 다른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학생, 자기 길을 혼자서 개척할 수 있는 학생을 원한다"고 했다.
사이먼스 부처장은 또 "동질성보다 차이에 가치를 두는 것이 미국 대학 신입생 선발의 요체"라며 "입학 사정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5~6명의 입학사정관이 길게는 1시간 이상 한 학생의 합격 여부를 놓고 논쟁할 때도 있다.
모두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주관과 왜곡이 개입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입학사정관제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오차와 왜곡을 줄여나가는 매우 주관적인 과정"이라고 했다.
◆ 공공적 성격 강한 UC버클리 '州內 거주 여부'도 중요사항
UC 버클리: 지역사회 공헌
과학기술에 특성화된 MIT가 학생의 창의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터프츠가 봉사의 시민정신을 강조한다면,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캠퍼스의 경우엔 이런 여러 기준 외에 지역사회 공헌도나 주 내 거주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주립대로서 공공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주 지역 등을 배려해 입학생을 선발해도 이에 대한 잡음은 거의 없다. 입학사정관제 벤치마킹을 위해 UC 버클리를 방문했던 국내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미국에는 합격한 학생은 합격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평가받았을 것으로 믿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이 어려운 까닭에, 학생이 설령 자기 실력보다 높은 수준의 대학에 들어가도 이게 그 학생의 미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학부모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심층 리포트] ['입학사정관제 원조' 미국 현지를 가다] "체조처럼… 창조적 학생에게 점수 더 줘"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