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9.02.19 03:31

젊음이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 황희연
    ▲ 황희연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청춘의 샘물'에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네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하이데거 박사의 밀실에 초대된 네 사람 모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전혀 믿지 않는다.

    200~300년 전, 스페인 모험가 폰스 디 레온이 '청춘의 샘물'을 찾아 떠났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진짜 마시면 젊어지는 샘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곤 결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이데거 박사가 그들을 초대해 마법과도 같은 청춘의 샘물을 마셔보라고 권한다. 주름살이 펴지고 열정이 샘솟는 영약의 효과가 금세 나타난다.

    젊음을 다시 갖게 된 그들은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노년의 지혜와 청춘의 열정을 모두 갖췄으니 이들의 두 번째 인생은 좀 더 완벽하게 흘러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다니엘 호손의 대답은 조금 부정적이다. 노인들은 서로 다투고 시기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다가 청춘의 샘물을 모두 바닥에 쏟아버린다. 젊음은 '와인 한 잔만큼이나 덧없이' 사라진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청춘의 샘물'과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아이로 죽게 되는, 이상한 시곗바늘 위를 걸어가는 한 남자는 '젊어지는 것'의 끔찍함을 온몸으로 증명해주는 인물이다.

    '청춘의 샘물'은 "젊어지는 것이 끔찍하다"고만 말할 뿐 그 이유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젊어지는 것의 끔찍함을 16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공들여 설명한다.



  •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던 1918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다. 남부러울 것 없는 단추공장 사장의 집에서 80세의 외모를 가진 괴물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심각한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벤자민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예전보다 젊은 상태로 변하고 죽음은 저만치 물러간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은 그는 양로원을 운영하는 흑인 어머니의 손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난다.

    벤자민이 노인들이 바글거리는 양로원에서 생의 초창기를 보내는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의 늙은 외모를 비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세상 사람 모두가 깊이 팬 주름살과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벤자민은 '왜 나는 남과 다를까'를 고민하며 늙고 추레한 외모를 비관하는 대신, 인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외모는 70대 노인이지만 아직 미숙한 10대인 벤자민의 가슴속에는 삶에 대한 온갖 기대와 희망이 부글거린다. 사랑을 배우고 술을 마시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망을 자유롭게 분출하며 살아간다.

    '잭'이나 '오! 브라더스'처럼 조로증에 걸린 인물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가 나이보다 늙은 주인공을 내세워 어설픈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달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한 남자의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본다. 벤자민의 삶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다.

    그는 세상과 부딪치고, 사랑을 배우고, 인생을 알아간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됐을 때, 벤자민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20대의 외모를 갖게 된다. 이 지점까지 영화는 인생을 거꾸로 사는 것이 지혜와 아름다움을 한 손에 쥐는 최고의 행운이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공포영화보다 끔찍하다. 벤자민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되지만, 결코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는 20대의 청춘이 지나면 10대의 반항기로 접어들 것이고, 곧 인생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는 갓난아이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아내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는 남편에게 의지하는 대신 남편을 키워야 하는 서글픈 신세가 돼버릴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것은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악몽을 동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늙어가는 사이, 자신만 홀로 청춘을 유지하는 것은 극단적인 외로움을 안겨준다. 청춘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지만, 청춘을 돌려받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우리가 그토록 돌려받길 열망하는 청춘이, 어쩌면 내 인생에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벤자민의 우아한 외침이 넓고 깊게 공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이미 뼛속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생각해 볼 문제

    1. 벤자민 버튼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진다면 어떤 인생을 살지 상상해보자.

    2. 나다니엘 호손의 '청춘의 샘물'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두 작품이 청춘을 다시 찾는 것에 대해 어떤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지 비교해보자.

    3. 과학자와 의사들은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노화를 막는 것은 인류의 희망일까, 아니면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