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승자만 있는 스포츠는 없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기사입력 2009.04.30 03:55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영화 '불의 전차'는 반젤리스의 음악과 함께 떠오른다. 1924년 올림픽에서 우승한 두 영국인 육상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불의 전차'는 스포츠영화의 고전이다. 스포츠영화라고 하면 경기장에서 우승의 영광에 눈물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스포츠 영화는 그 각본 없는 드라마를 각본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포츠 영화에 열광할까? 그리고 스포츠 영화는 늘 승리만을 다루는 것일까?

    지난 2008년 한국 극장가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와 함께 시작됐다.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아깝게 은메달을 딴 여자핸드볼팀의 이야기를 다뤘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2등이 기억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올림픽이 끝난 후 언론 매체에서 다루는 것은 대부분 금메달을 얻은 선수에 대한 소식뿐이다. 올림픽의 등위가 꼭 노력의 순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1'이라는 숫자에 연연한다.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위), '더 레슬러'의 한 장면.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위), '더 레슬러'의 한 장면.
    애당초 실패가 확정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은 의외의 사건으로 분류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스포츠 영화는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우승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와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러한 공식을 뒤집고 실패의 드라마를 써냈다. 성공의 요인은 바로 이 작품이 경기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승리로 귀결되는 스포츠 드라마가 1인 경기 위주에 선수를 영웅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이 영화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선수들을 내세웠다. 주인공도 없고 특별한 영웅도 없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만큼은 모든 선수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 스포츠 선수들의 삶도 유사할 것이다. 전통적인 스포츠 영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록키'나 '불의 전차'와 같은 작품을 떠올린다. 가난, 정치적 억압, 부상과 같은 시련을 겪은 선수들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 내고 결국 승리한다.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도 그런 점에서 스포츠 드라마의 공식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엄마가 없고 가난한 하니가 못된 라이벌 나애리를 이겨내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직 승리만 있는 스포츠 영화들은 인생의 복잡한 면을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엄밀히 말해 누군가는 그렇게 성공하지만 누군가는 끝끝내 패배하고 만다. 승리로 귀결되는 스포츠 영화들은 패배자의 자괴감을 돌아보지 않는다. 경주마들의 눈을 가리듯 희망과 성공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스포츠 영화들은 이 케케묵은 환상의 공식을 고쳐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009년 아카데미에서 눈길을 끌었던 '더 레슬러'라는 작품만 해도 그렇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퇴역 레슬러이다. 몸은 늙고, 부상도 만성적이라 현역 선수로 뛰기엔 무리가 있다.

    그의 삶에서 화려한 프로레슬러의 영광은 이미 먼 과거에 묻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링 위에 선다.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사람들은 비난하지만, 그에겐 쇼가 곧 인생이고 생계이다. 영화는 이러한 점을 보여주기 위해 퇴역 레슬러들이 짜는 쇼를 자세히 보여준다. 후배는 선배의 몸에 스테이플러를 박고 선배는 유리창을 내려치기로 협상한다. 영화 속에 묘사된 쇼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가 선 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 삶을 비유한다. 링이 곧 삶이라고 말했듯이 스포츠 영화는 종종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비유적 수단으로 채택되곤 한다. TV중계가 보여주는 경기장 너머로 카메라의 각도를 확장하면 거기엔 자신의 생애를 걸고 있는 한 인간이 등장한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경기장에서 환호하고 우승하고 열심히 뛰는 선수만이 보이지만 그는 선수이기 이전에 사연을 지닌 인간이다.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의 삶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시원하게 물길을 가르는 박태환 선수와 아찔한 높이의 점프를 성공해내는 김연아 선수에게 감탄한다. 국민 남동생, 국민 여동생이 된 그들. 그런데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밖에는 선수가 아닌 평범한 대학생으로서의 삶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여백의 삶들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이 호기심에서 바로 스포츠 영화가 시작된다.

  • ※더 생각해 볼 문제

    1. 감동 깊게 보았던 스포츠영화를 골라 어떤 점이 감동적이었는지 서술해보자.
    2. 실패한 주인공을 다룬 스포츠 영화를 골라, 주인공의 성공과 실패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토론해 보자.
    3. 왜 요즘엔 비주류 스포츠, 실패한 경기를 영화화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