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바가지 머리가 보여준 전통의 참뜻… 세대 간의 조화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9.08.27 07:14

'요시노 이발관'전통은 꼭 지켜야 할까?

  • 영화 '요시노 이발관'의 한 장면
    ▲ 영화 '요시노 이발관'의 한 장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풋풋한 멜로 영화 '순수의 시대' 첫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자꾸 울화가 치민다. 뉴욕 사교계의 거목인 아처가(家)와 밍코트가가 자식들의 결혼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꼴이 참으로 시답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물은 이런 방식으로 주고받는 게 맞네, 결혼식은 이렇게 치르는 게 올바른 것이네, 말 잔치만 벌이며 허송세월 하는 동안 결혼 당사자인 뉴랜드(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메이(위노나 라이더)의 호기심 넘치는 사랑은 살짝 식어버린다.

    이것은 비단 뉴욕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대한민국 선남선녀들도 대부분 '전통'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도대체 그 놈의 전통이 무엇이기에?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 '요시노 이발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영화다.

    주민이 얼마 되지 않는 작은 해안가 마을, 여기에는 아이들이 무조건 '바가지 머리(요시노 가리)'를 해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나이나 취향에 상관없이 무조건 바가지 머리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시 때때로 학교 앞에서 두발검사를 받는다. 아이들을 친 엄마처럼 돌보는 요시노 이발관의 주인아주머니는 등교시간에 가위를 들고 나타나 아이들의 머리를 일정하게 잘라주는 친절(?)을 베푼다. 언뜻 보면 귀엽고, 언뜻 보면 무서운 몰개성의 아이들이 만들어진다.

  •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청소년의 두발자유를 허하라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요시노 이발관'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태껏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모든 것들에 한번쯤 의문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모든 전통이 꼭 유지돼야 할 이유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질문의 단초를 던져준 것은 도쿄에서 전학 온 사카가미다. 무스로 살짝 들어 올린 앞머리에 염색까지 한 소년이 묻는다. "꼭 바가지 머리를 해야 돼? 이건 너무 촌스럽잖아!" 질문을 받는 아이들 역시 왜 여태껏 자신들이 모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요시노 이발관의 주인아주머니는 '전통'이라는 단순한 대답으로 아이들의 질문을 정리한다. 그 마을에는 아이들이 바가지 머리를 하지 않으면 괴물에게 잡혀간다는 전설이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괴물의 손에서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바가지 머리를 전통으로 내세우며 살았다.

    이것은 마을의 절대적인 가치이자 믿음이다. 전설을 철석같이 믿는 요시노 이발관의 주인아주머니는, 전통을 지키는 일이 바로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옆 마을에 놀러 간 아이들은 사람들 눈에 쉽게 띄어 일탈행동을 하지 못한다.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실종되기 어려운,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요시노 이발관'은 전통에 반기를 든 아이들이, 결코 실종되기 어려울 거라 믿었던 그 아이들이 실종되는 반나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이들은 사카가미의 '바가지 머리 거부 운동'에 호응해 두발자유를 외치며 함께 집을 나간다. 집을 나간 아이 중엔 바가지 머리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발관 아주머니의 아들(요네다 료)도 섞여 있다. 아들은 전통을 운운하며 억지를 부리는 엄마의 논리가 못내 부끄럽고 못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속성이다. 전통은 신성하면서도 고리타분하고, 대단한 듯하면서 또 한편으론 쓸데없다. '요시노 이발관'은 바가지 머리라는 전통을 두고 대치하는 두 세대의 갈등을 통해, 전통을 꼭 지켜야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되묻는다. 언뜻 보기에 두 세대의 갈등은 전통의 승리로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카가미는 그토록 하기 싫었던 바가지 머리를 영화 마지막에 결국 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이발소 장면에서, 아이들과 아주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마을의 전통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하지 않고, 아이들은 전통에 무조건 반항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전통 수호 방식이다. '요시노 이발관'은 매 순간 다채롭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더 생각해볼 문제

    1. 요시노 마을에는 특별한 전통이 하나 있다. 아이는 반드시 바가지 머리를 해야 한다는 것. 우리 주변에 이처럼 오랫동안 전해내려 온 전통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자.

    2. 전통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일까? '요시노 이발관'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