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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하나 낼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뭘까? 산·바다·지구? 정답은 바로 눈꺼풀이야. 아무리 애써도 자꾸 감기잖아. 졸음 앞에선 누구도 어쩔 수가 없지. 저길 봐.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아 깜빡 졸고 있어.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지? 조심스레 새 곁으로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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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매화나무 옅게 색칠한 이유
나무는 두 종류야. 매화나무와 대나무. 먼저 새가 앉아 있는 매화나무부터 보자. 나뭇가지가 활처럼 탄력 있게 휘었어. 새가 앉아서 그렇지 뭐야. 색깔도 매우 옅고, 잘 보면 나뭇가지 속이 빨대처럼 비었어. 그래서 더욱 가벼운 느낌이야.
꽃봉오리도 몇 송이 달렸어. 봄이 막 시작되었나 봐. 그래도 여전히 추운지 새는 몸을 잔뜩 움츠렸어. 아 참, 무슨 새냐고? 참새야. 까치와 더불어 조선의 대표적인 텃새였지.
참새 색깔 좀 봐. 매화나무 색깔처럼 옅어. 참새를 짙게 그렸다면 얼마나 무거워 보였겠니? 나무가 똑 부러졌을 거야. 그림의 조용한 분위기는 산산조각 나는 거지, 뭐.
그럼 매화나무도 짙게 칠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게 하면 나무는 더 단단해 보이겠지. 하지만 나뭇가지에 살짝 걸터앉은 아슬아슬함은 사라질 거야. 그러니 옅은 색깔로 그릴 수밖에.
지금 나뭇가지와 참새는 한 몸이야. 나무도 휘었고 참새도 몸을 활처럼 구부렸잖아. 조는 참새와 함께 꽃봉오리 역시 한숨 돌리고 있어. 추운 날씨와 힘겨운 싸움을 했거든.
대나무는 위아래에 그렸어. 마치 참새를 보호해 주듯 감싸고 있지. 색깔도 짙게 칠했어. 원래 보디가드는 강해 보여야 하잖아. 대나무도 매화나무처럼 휘었지? 똑같은 마음으로 참새의 잠을 지켜 주고 있어. -
● 매화, 대나무 가지로 화면 세 등분
옆으로 뻗은 가지들이 화면을 세 등분했어. 빈 곳이 많지? 특히 위쪽은 텅 비었어. 바탕 색깔도 옅어서 좀 심심하다고? 이 그림이 음식이라면 양념을 더 쳐야겠지. 하지만 지금이 딱 좋아. 자꾸 양념을 치다 보면 오히려 이상한 맛이 날 수도 있잖아.
그래, 이 그림은 더는 양념이 필요 없는 흰죽이야. 하얀 쌀로만 끓인 죽 있잖아. 그림을 천천히 음미해 보렴. 핫소스를 뿌려 먹는 스파게티처럼 자극적이지 않아. 오래 바라보아야만 느낌이 오거든. 바로 이 그림의 매력이야. 그래도 너무 밋밋하면 싫증 나잖아. 댓잎은 좀 짙게 칠했지? 흰죽에 살짝 소금을 쳤다고나 할까. 약간 짭짜름하게 입맛을 돋우었지.
● 아버지 조속도 새나 나무 잘 그려
‘조는 새’를 그린 사람은 조지운(1637~?)이야. 특히 매화를 잘 그린 선비 화가지. 조지운의 집안은 대대로 그림 솜씨가 있었나 봐. 아버지 조속(1596~1668년)도 새와 나무를 잘 그렸거든. 아버지의 솜씨를 물려받았어.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
아버지 조속도 ‘조는 새’를 그렸거든. 여기에는 대나무만 없을 뿐이야. 물론 나무와 새를 조지운과는 달리 짙게 칠했지. 그 밖에는 거의 비슷해. 선생님도 처음에는 같은 작품인 줄 알았어. 몇 번을 보니까 겨우 구별되더라. 그림까지도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라니, 생각할수록 참 재미있어!
[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조지운 '조는 새'
조용, 조용! 참새 깰라
활처럼 휜 나뭇가지 부러질까 조마조마~
참새는 세상모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