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로 본 논술] 막걸리 열풍, 新 문화자산 찾는 계기 돼야
강방식 동북고 교사·EBS 사고와 논술 강사
기사입력 2009.12.24 03:36

한국 대표酒의 부활

  • ◆막걸리 열풍의 확산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올해 고객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공통된 소비행태로 신종플루 영향으로 건강에 대한 깊은 관심, 친환경을 모토로 한 녹색소비 확산, 전통 상품 인기 등의 3가지를 들었다. 마지막 현상을 대표하는 것은 막걸리 열풍이었다.

    대입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최근 수출이 늘고 있는 막걸리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시사문제까지 출제됐다. 막걸리 전문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고급 주류만 판매하던 백화점에도 막걸리가 당당하게 진열돼 있다. 대부분의 주류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인데 반해 막걸리 시장만큼은 홀로 상승세다.

    막걸리 인기는 일본에서 2~3년 전부터 시작됐다. 막걸리 투어를 오는 일본인들도 많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관심을 먼저 받자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국내 소비자들도 먼지 속에 묻혔던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막걸리를 예찬하고 있다.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 속에서 막걸리 사랑이 더욱 무르익는다.

    ◆막걸리를 사랑하는 대통령과 문학인

    막걸리는 농사지을 때 배고픔을 달래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음료로 농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농주(農酒)라 불렸다. 술이 맑지 않고 탁해서 탁주(濁酒), 텁텁한 맛으로 고급주는 아니라는 뜻으로 박주(薄酒)로 불렸다. 종합해보면 막걸리는 서민을 대변하는 술로 명맥을 이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농민들과 산업현장의 노동자들과 항상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모습으로 서민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줬다. 그는 쌀로 술 빚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도 산성막걸리만큼은 조제를 허락하기도 했다.

    결국 산성막걸리는 최초의 민속주로 지정됐다. 반면에 막걸리를 먹고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일이 잦아서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 마을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등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막걸리를 건배용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 국제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막걸리는 문학인들이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로 사용된다. 특히 '소풍'의 시인 천상병은 유명 문인들에게 막걸리 값을 달라고 했는데 막걸리 값이 문인들의 문학 수준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막걸리 인기를 통해 본 사회현상

    최근에 여성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회식 문화가 바뀌고 있다. 술자리를 몇 번이나 바꾸며 밤샘 술자리를 즐기던 남성들의 음주 문화가 여성들의 문화 스타일에 젖어들고 있다. 소주에서도 갈수록 낮은 도수의 술이 만들어지고, 레몬이나 기타 과일을 섞어 만든 향긋한 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막걸리도 도수가 낮아서 여자들이 부담 없이 즐기고 다른 종류와 합쳐서 새로운 맛을 낼 수가 있다. 즉, 막걸리 매출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성들의 파워가 생활 속에서 강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막걸리를 포함해 모든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의 모습이다. 발효식품은 주로 농경문화에서 만들어지며, 자연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영양소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특히 막걸리는 서민적 느낌이 강한데 지금은 호텔이나 골프장에도 많이 판매되고, 우리 쌀로 빚은 고급 막걸리가 프랑스의 고급 포도주와 경쟁해서 승리하고 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세상, 건강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 된 세상 한 가운데에 막걸리 열풍이 있다.

    막걸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한류문화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김치, 불고기, 비빔밥에 이어 한국을 홍보할 수 있는 문화 아이템이다. 단순하게 경제적 이윤만을 올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막걸리 수출을 생각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어떤 물건이나 현상을 둘러싼 이야기가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대장금'은 궁중음식을 중심으로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한국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대표적인 문화자본이 됐다. CNN이 막걸리 열풍을 '잊혀져 가는 과거를 되살리고 미래를 다시 쓰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곱씹어 막걸리를 통해 새로운 문화자산을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