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원격교육 1년, 교사들은 말한다 “원격수업, 왜 부실하냐고요?”
입력 2021.05.03 10:09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 현직교사 11명 인터뷰
  • 초등 원격수업이 1년을 지나면서 교사들은 교육내실화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전국 초등 원격수업이 1년을 지나고 있다. 비대면 원격교육은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시작됐고, 선례가 없었기에 초기부터 우왕좌왕 하는 모습도 보였다. 실시간 교육이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교사들은 교실과 다른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시간 비대면 교실’에서 교사들의 교육경력은 무의미했다.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교사 간 교육내실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물론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의 들쭉날쭉한 정책도 교사들의 머리를 하얗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국민청원까지 올리며 교사들의 부실한 준비와 교육내용을 질타했고,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언론도 교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 원격교육이 부침을 겪던 지난 연말, 교사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 교수가 있다.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다. 그는 교육공학 연구자로 예비교사교육을 담당하며 교사들과 소통해왔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도 현재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것이다. 화면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교사들을 보며 ‘왜’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논문을 쓰기로 했다. 권 교수는 지난달 한국초등교육에 ‘코로나 시대 초등 원격수업이 부실한 원인에 대한 질적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수도권에 근무하는 초등교사 11명(여7·남4, 공립)을 두 달에 걸쳐 인터뷰했는데, 사실 논문이라기보다 ‘증언집’에 가깝다. 교사들은 왜 1년이 지나도록 실시간 비대면 교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저희도 교육부의 보도자료를 맘카페에서 돌아다니는 것으로 먼저 봐요. 그리곤 TV 보도를 봐요. ‘개학을 5월 20일에 하는구나.’ 제일 마지막에 교육부에서 지침이 내려와요. 지침이 내려올 때쯤이면 너무 늦은 거예요. 그런 게 화가 나죠.”(A교사) 

     

    “지역 맘까페 같은 데서 돌려보는 거라고 (정부정책에 관한) 한 장짜리 이미지 파일을 받아보는데, 항상 맞아요. 그게 너무 신기하죠. 누가 배포하는 건지 저도 궁금해요.”(B교사)

     

    문제는 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에게 ‘공식정보’가 신속하게 제공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교사들은 원격수업을 비롯해 개·휴교일 등 기본적인 학사일정과 각종 지침을 정부·언론, 학부모를 통틀어 가장 늦게 알게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정부의 교육정책이나 지침을 학부모에게 안내하거나 학습계획을 짜려고 일부러 맘카페에 가입해 주기적으로 정보를 찾아보는 실정이다. C교사는 “온라인 수업을 하는 동안 교육부는 교사들과 협의나 양해를 구하는 과정없이 그냥 뉴스로 알린다. 또 기자재나 교육환경에 전혀 지원이 안 된 상태에서 교사들이 알아서 하게끔 (정부는) 발표만 해놓고 교사들이 어떻게든 끌고 가게 만드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권 교수는 “예측할 수 없는 정책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교사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사들의 무기력감이 지속되면서 ▲시키는대로 획일화(튀지 말 것) ▲일방적 교육(플랫폼 통일) ▲최소한의 교육(콘텐츠 통일)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교사들 사이엔 ‘원격교육에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고, 조금 자중하고,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하자. 학생들이 등교하면 우리가 정말 교육을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교육내실로 들어가면 더 답답한 상황이 펼쳐진다. 현 초등 원격교육은 오랜 세월 다져지며 체계를 완성한 온라인교육(online learning)이 아니라,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탓에 임시방편으로 시행한 ‘긴급원격교육(emergency remote learning)’이다. 그만큼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한국 사교육시장의 ‘인강(인터넷 강의)’ 방식에 의존하다보니 초등교육과정이 대학입시나 성인 자격증 취득반과 같은 ‘학습’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초등 저학년의 경우 대화와 체험, 관계맺기 등을 판서식으로 배우고 있어 교사들은 우려한다. 예컨대 ‘e학습터’ 등 교육플랫폼이 자료 업로드 위주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비대면 교육의 내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D교사는 “(현재의 원격교육에선) 학생들 반응에 따른 피드백을 할 수 없다”며 “학생들이 직접 풀면서 함께 배워야 할 국어만해도 내용을 설명하고 핵심만 짚으며 나가기 때문에 한 시간에 두 차시 이상의 진도를 나가게 된다. 통합교과는 8차시 분량의 수업을 단 30분에 다하게 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인강 형태를 70% 이상 활용하는 교사는 69%에 이르고, 과제물은 ‘교과서 답안 작성(72.7%)’ 정도로 단순하게 내고 있었다. 이밖에도 초등 원격교육이 채택한 인강식 수업은 학생들이 영상만 틀어놓고 딴짓을 하거나 빨리감기·몰아서 보기 등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 지속된 문제제기에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이처럼 원격교육이 진행될수록 교사가 할 수 있는 교육영역이 대폭 줄면서 초등교육이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 교수는 “잘못된 원격교육 모델, 교사연수의 부족, 저작권에 대한 걱정, 교사의 낮은 미디어리터러시는 교사들로 하여금 ‘안전하고 쉬운 방법을 추구’하게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했다. 당장 오프라인 교육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교사들이 하루빨리 무기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 정책대안이 절실하다. 

     

    최근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 원격교육의 새로운 교수법 연구에 관해 스스로 연구하고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E교사는 “경력과 관계없이 교수력이 있는 교사들은 원격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떻게 가르칠지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 ‘안돼’ ‘못하겠네’가 아니라 ‘우린 뭘 할 수 있지?’라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논의한다. 이런 상황을 뚫고 가는 힘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권 교수도 “높은 디지털리터러시로 다른 교사에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적극적인 교사들이 있는데 이들을 ‘조용한 체인지 메이커’로 분류할 수 있다”며 “이들은 개방적 태도를 가지고 학부모 평가에 비교적 적은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SNS활동과 온라인 콘텐츠 생산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사들도 원격교육이 대면교육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걸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 긴급원격교육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질을 올릴 방안을 도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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