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있어서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지요. 특히, 철학에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교육한다는 것’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또, 교육학에서는 교사나 교수처럼 교육하는 기회가 많을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교육하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발달학에서 다루는 부모의 자녀 교육 또한, 그렇게 힘들 수가 없지요. 어쩌면, 우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너무 쉽게 말하지만, 말 만큼 쉽지 않은 게 교육인 것도 사실입니다.
저 또한, 경찰관 신분이지만 많은 교육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이들 교육을 빼놓고 교육을 논할 수는 없지요. 특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 요청이 들어올 때면,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서 재밌는 ‘멘사(Mensa)’ 문제들을 고르며 만지작거리곤 합니다. 멘사 퀴즈는 저만의 ‘뇌 풀기 게임’이기도 하고, 강의 전 아이들과 ‘라포(rapport)’를 만드는 기회도 되지만, 그보다 아이들의 흩어진 주의를 쉽게 끌어모으는 집합 효과가 더 큽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학년이 내려갈수록 어렵고, 특히 사춘기 절정에 있는 중학생 남자아이들을 앉혀놓고 교육한다는 건, 보통 사람의 인내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행이죠. 그래서 멘사 문제를 활용한 ‘뇌 풀기 게임’은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멘사 문제를 풀다 보면, 항상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멘사 정도의 문제라면 대개 IQ 148 이상 되는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푸는 문제인데도 일반 아이들이 쉽게 맞추는 걸 보게 되죠. 그것도 교실에서 산만한 행동을 하거나, 옆 친구와 장난치며 까불어대는 아이가 얼렁뚱땅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문제를 잘 맞힐 거다’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결과는 반대일 경우가 많죠. 특히, 저는 일명 ‘까불이’가 문제를 맞히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줍니다. 그럼 문제를 맞힌 까불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고는 지금까지 이런 칭찬을 받아본 적 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필자 : 와,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맞히다니, 대단하다 너?
아이 : 제가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문제를 맞힌 건가요?
필자 : 그럼 당연하지. 이 문제는 IQ 150은 돼야 맞추는 건데 그걸 네가 맞췄다니까?
아이 : 허허. 그럴 리가. 이상하네요.
필자 : 공부는 좀 하는 편이니?
아이 : 아뇨. 공부는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필자 : 아깝다. 내가 볼 때 넌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성적이 나올 텐데. 오늘부터 제대로 공부해 보는 거 어때? 아저씨 예감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거든!
아이 : 허허. 제가 공부를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아이에게 칭찬해주고 교육이 끝나 학교를 빠져나오면, 몇 시간 후 여지없이 문제를 맞힌 아이로부터 문자를 받습니다. “저, 경찰관님, 공부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는 거죠?” 이러한 아이의 문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우리는 한 어른의 칭찬 하나로 아이의 새로운 감각이 작동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배운 ‘청소년 발달학’에는 저만의 확고한 ‘신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성장기 아이가 가지는 ‘감각의 중요성’입니다. 특히, 이 감각은 아이가 칭찬을 받게 되면 요란하게 움직이는 현상을 보이죠. 사실, 요즘 자녀들은 ‘칭찬받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반에서 10등인데도 아이의 자존감은 낮고, 복도에서 휴지를 줍거나, 파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드려도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아이에게 칭찬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모든 영역을 싸 잡어 취급하는 건, 중요한 시기에 아이의 예민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구간이 될 수도 있죠.
2003년, 대한민국에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으면 자녀를 겨냥한 「칭찬은 아기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패러디 물까지 등장했죠. 그 책 또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긍정적인 표현’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칭찬’이나 ‘격려’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달물질이라는 걸 모르지 않죠. 그중에서도 ‘인간의 욕구 단계설’을 만든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칭찬은 인간의 욕구 중 식욕과 수면욕 다음으로 절대적인 영역을 차지한다.”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칭찬’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생존 욕구’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칭찬은 부모가 꼭 붙잡아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칭찬 세례를 두고 반문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한 부모님은 저에게 "칭찬할 게 있어야 칭찬하죠."라고 대 묻기도 합니다. 사실, 칭찬할 게 없는 아이에게 무작정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가는 오히려 아이가 오만한 태도나 거드름을 피울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하는 건 사실이죠. 어쩌면, 부모님의 노골적인 질문이 현실적인 부모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막무가내식 칭찬은 조심해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두고 칭찬해야 할 때를 최소한 놓치지 말자는 뜻으로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또, 부모의 칭찬 기준에 대해서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에게 부모의 칭찬이 중요한 건, 아이의 자존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걱정되는 건, 칭찬받지 못한 아이가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디를 기웃거릴지 더 고민이 됩니다. 특히, 부모는 아이가 사이버 공간을 기웃거리고 그 안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부모는 ‘디지털 그루밍’에서 아이를 길들여 성을 착취하는 수법이나 ‘랜덤채팅’ 같은 익명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도록 하는 이유를 단순히 아이의 호기심과 게으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넉넉한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체력과 여유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여유가 없으면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기는 어렵고 또, 그만큼 좋은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 법이죠. 그래서 부모에게 ‘칭찬’을 함부로 요구하는 건,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에게 칭찬은 적절한 시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라고 해서 부모가 아이의 성장 구간을 멈춰 세울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사회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심리 사회학적 발달 단계」 이론에서 “만 6세에서 12세 해당하는 학령기 아동의 자녀에게 자존감을 놓치면 이후 아이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의 칭찬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중요한 전달 물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 부모는 칭찬을 위해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표현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 신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이번 글을 시작으로 ‘숨은그림찾기’처럼 부모가 몰랐던 아이의 ‘칭찬 그림’을 찾는 게임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
Copyright Chosunedu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