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수험생에게 ‘공부’만큼 중요한 것
입력 2020.09.03 10:34
  • 전교 520명 중에 512등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비뚤어지기 시작했고, 학교 성적은 93점에서 36점으로 곤두박칠쳤습니다. “담배도 피우니?”라는 질문에 “응, 아빠랑 같은 거…”라는 대답을 듣고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직장 부서를 옮기고 인근 도시로 이사까지 감행했습니다. 겨우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첫 입학시험에서 512등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 뒤에 8명이나 있다고 격려를 해줬더니 그 8명은 체육 특기생이라더군요.

    달리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기초학력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집중력을 회복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고, 아이는 입학 후 1년 동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나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혼공(혼자 공부하기)’을 할 수 있었지만, 학교 성적은 녹록하지 않았지요. 결국, 첫 수능의 참담함을 경험한 아이는 결심한 듯 “1년만 더 하면 제 꼭짓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재수를 제안했고, 부모는 확신이 없었지만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운 좋게도 아이는 수능에서 수학과 사탐 영역에서 1등급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제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건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능’과 인연이 깊습니다. 두 아들을 모두 재수까지 시켜가며 대학에 보냈고, 막내아들은 형이 다녔던 재수학원을 ‘형제 할인가’라는 혜택까지 받으며 다녔지요. 그러면서 정육점 텔레비전으로 수능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총 4년을 연이어 수능을 치렀으니 이만하면 수능과 관련해서 칼럼을 쓰는 것도 터무니없는 건 아닐 겁니다.

    수능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셈을 해보니 수능일까지 딱 93일이 남았더군요. 예전 같으면 100일을 앞두고 못다 한 공부를 하기보다는 지친 체력을 관리하고 기출문제 위주의 응용학습 단계로 진입했어야 할 시기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교와 학원은 원격 강의로 밀렸던 진도를 메우느라 분주합니다. 결국, 예상치 못한 일정을 아무 불평 없이 따라야만 하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걱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수능과 관련하여 '코로나 19 대응 2021학년도 대입 관리 방향'이라는 교육부의 대책 발표가 있었습니다. 올해 12월 3일에 치러지는 2021학년도 수능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수험생은 병원 등에서 수능을 치르고, 자가격리 판정을 받은 수험생은 별도의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지요. 대학별 평가에서는 비대면 시험이 아닌 이상 확진자의 응시가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코로나 19 상황을 고려하여 수능 등 대입 관련 집합평가가 감염 확산의 고리가 될 수 있기에 마련한 대안이라고 하지만 뉴스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올해 수능은 48만여 명이 전국 1,185곳 학교에서 치를 예정입니다. 또 10월과 12월 사이 대학별로 183곳에서 치러질 필기·면접·실기 등 대학별 평가도 130만여 명이 응시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최근 불거진 코로나 2차 유행은 아이들의 수능 체력에 위협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더 우려되는 건, 수능 당일까지 ‘코로나 범유행’이 몇 차례 더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당장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은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됩니다. 당장 부모부터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니 바깥출입부터 자제하고 연일 쏟아지는 뉴스에만 시선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 알려주는 조언들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기에 어떤 부모는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성경책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맞습니다. 부모 또한 수험생 부모로는 유례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단, 이번 글을 위해 수능을 두 번 치른 아들의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평소 용돈이 아니면 살갑게 문자 한번 잘 안 하는 아들이지만 이번에는 용돈을 보내기 전에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망설임 없이 ‘체력’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수험생에게 필요한 건 ‘체력’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수능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부모에게 신경질을 부리거나,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심지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행동은 결국 ‘체력’이 달려서라고 했습니다.

    체력은 단순히 힘을 불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체력은 아이의 균형을 조율하는 통상적인 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체력이 떨어지면 몸과 마음의 균형도 무너질 수밖에 없고 결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수험생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에게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건 결국, 단순히 피곤한 상태를 넘어 공부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신호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체력은 수능을 앞둔 아이의 상태를 지속하는 동력이자 반대로 ‘안전장치’입니다.

    또, 아들은 체력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부모의 상냥한 ‘태도’를 부탁했습니다. 이맘때 부모가 상냥한 태도로 아이 입으로 넣어주는 음식은 당시 시큰둥하게 받아먹었지만, 지나고 보니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특히, 단백질 보충과 자연식 음료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꽤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초콜릿 같은 단맛도 그때그때 컨디션을 올리는 데 쏠쏠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모든 행동의 바탕에 부모의 상냥한 태도에 있다고도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상냥하게 행동해 줄 때 아이는 심리적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지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하는 것들'의 저자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영민 작가도 자신의 저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체력이 달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고력이 저하되며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상냥한 태도를 가지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또 “매사에 체력은 기본이지만 학업에 있어서 체력은 특별히 중요한 요소다”라고도 했지요. 결국, 체력은 모든 활동에 있어서 필요충분 요소이자 수능의 결과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난해까지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고 지금은 수험생이 된 아이들과 오랜만에 소셜미디어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기프트콘으로 사탕과 초콜릿을 전해주며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지금 부모님이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에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밥부터 먹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먼저 지친 자기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지쳐있는 자신을 부모가 상냥하게 바라봐주며 작은 ‘리액션’을 해주길 원했습니다.

    아이가 수능을 준비한다는 건, 아이에게는 어렵고 긴 싸움을 해야 하는 고된 과정입니다. 그만큼 부모가 모르는 체력을 요구하지요. 부모는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네 어려움을 공감한다”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능은 아이의 입장이 아니고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게다가 아이의 체력은 부모가 눈여겨 봐주지 않으면 진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부모가 차려놓은 영양가 넘치는 밥상보다 먼저 부모가 보여주는 영양가 만점의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을 통해 아이의 체력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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