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의 오묘한 오뮤(오페라&뮤지컬) 산책]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
입력 2020.07.24 09:07
  • 오페라는 대부분 원래 있던 이야기나 작품을 음악적으로 확장시킵니다. 완성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되는 것이죠. 그래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민담을 오페라로 만드는 경우도 많고,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문적인 대본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알아 볼 두 작품은 등장인물이 같아서 종종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들어진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이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연결해서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과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같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요. 이야기의 전개상 <세비야의 이발사>가 먼저이고 <피가로의 결혼>이 뒤에 이어집니다. 그런데 작품 발표 시기를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1782년 파이지엘로가 발표한 <세비야의 이발사>를 이후에 로시니 1816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모차르트는 속편의 형식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두 작품은 작품 자체의 구성만으로도 꽉 채워져 있는 작품입니다. 귀에 익은 유명한 곡들도 물론 많습니다. 오페라의 공연 역사에서 굉장히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작품을 함께 만나 보시죠.   
  • 세비야의 이발사의 한 장면
  • ▲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이탈리아의 음악가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하게 되지만 음악 학교 정규 과정을 마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로시니는 매우 일찍부터 실제 공연에 참여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페라 창작에서 탄탄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로시니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자>, <오셀로>, <도둑까치>, <이집트의 모세>, <오리백작>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세비야의 이발사>입니다. <윌리엄 텔>을 마지막으로 오페라 작곡을 멈춘 로시니는 그 후 30년 동안 종교 음악과 소품을 창작합니다. 오늘날 그는 이탈리아 고전 오페라의 전통을 이어 발전시킨 최후의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16년 만든 <세비야의 이발사>는 오페라는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드 보마르셰의 동명 소설을 개작해 만들어졌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초의 창작은 아니고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이전 작품에 비해 풍자가 두드러지고 쾌활하고 풍부한 선율 이 강조되었습니다. 초연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한 탓에 흥행에 실패하지만 작품의 탁월한 예술성이 인정되어 곧 사람들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고전 오페라들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 피가로의 결혼식
  • ▲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위대한 음악가인 모차르트는 모든 부분에서 성공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오페라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대본에 달려 있다”고 믿던 다 폰테. 그의 탁월한 언어감각과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만나 화려한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모차르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는 모두 폰테의 대본에서 출발합니다. 

    1782년에 작곡가 파이지엘로가 발표한 <세비야의 이발사>가 엄청난 흥행을 끌자 모차르트는 보마르셰의 속편을 오페라로 만들고자 생각했고 다 폰테를 설득해서 걸작을 만들게 됩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빈의 부르그테아터에서 초연되었는데요. 처음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옵니다. 흥행이 너무 된 탓에 당시 국왕이 앙코르의 횟수를 제한하는 명령을 선포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 작품은 전 세계 모든 오페라단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 신분제도에 대한 도발적 질문
    <피가로의 결혼>이 파리에서 초연될 당시 루이 16세는 작품의 상연을 전면 금지 시킵니다.  기존의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성은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되는데요.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박사와 백작은 모두 로시나와 결혼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지도층이면서도 모범을 보이거나 양심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굉장히 밝은 분위기로 이어지는 작품이지만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귀족층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패한 권력의 조롱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모두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굉장히 빠른 템포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서로의 잘못을 간파하고 공략하려 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로시나의 집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결혼을 위한 공방전이라는 제한적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공간과 스토리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빠르게 전개되는 템포 덕입니다. 여기에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곡들을 사용하여 작품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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