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은 스스로 절제하는 법부터 배웁니다”
입력 2019.09.18 09:16
-[인터뷰] 현직 외교관 엄마가 전하는 프랑스 육아 경험기
  • /본인 제공
  • ‘불량엄마’. 유복렬(56) 주카메룬 대사는 종종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 미국, 튀니지,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두 딸의 일상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바쁜 업무에 치여 아이들 숙제를 도와준 적도, 시험공부 뒷바라지를 해준 적도 없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시키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성취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두 딸은 프랑스에서 그를 따라 6년 6개월을 지냈다. 대다수 프랑스 부모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함께 키운다. ‘워킹맘’ ‘직장맘’ 같은 말은 따로 없다. 유 대사도 여느 프랑스 부모처럼 늘 바쁘게 뛰어다니며 두 딸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그의 두 딸은 자연스럽게 매사 스스로 하는 법을 터득했다. 유 대사는 이런 경험을 엮어 지난달 ‘프랑스 엄마의 힘’(황소북스)를 펴냈다.

    ◇프랑스 부모, 아이를 독립적 인격체로 생각해

    “프랑스에서는 3세부터 유치원 의무교육이 시작됩니다. 어려서부터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절제’예요. 이를테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식사하고, ‘구테’(GOÛTER)라는 시간에만 간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이러한 육아 원칙은 그대로예요. TV를 보는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죠.”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를 훈육할 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훈육하는 상황이나 경우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면 아이는 눈치를 보거나 무마하는 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유 대사는 “아이들이 떼를 쓰더라도 절대 꺾이지 않고 훈육을 하는 건 부모로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배워야 할 점”이라며 “가령 아이가 잘못했다면 어떤 자리에서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곧바로 야단을 치는 식으로 지독하게 훈육을 한다”고 했다. “아이가 버르장머리 없고 멋대로 굴면 ‘꼬마 제왕’(enfant roi)이라고 흉을 봐요. 아이가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하도록 내버려두는 육아 방식을 꼬집는 말이죠. 프랑스 부모들은 이런 지적을 가장 치욕스러워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프랑스와 한국의 육아 방식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고 했다. 프랑스 부모는 아이를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동시에 올바른 시민으로 키우고자 힘쓴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노키즈존’이 프랑스엔 없는 이유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때 또는 다른 사람 집에 아이를 맡기거나 공공장소에 아이를 혼자 둘 때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바로 ‘현명하게(Sage)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앞으로 자녀가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죠.”

    ◇아이 학습 성향 따라 언어 체득… 스스로 배워야

    자녀 교육에 대한 태도도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유·초등 시기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학습 분야는 단연 ‘언어’다. 일찍 배울수록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프랑스에선 언어 교육에 조바심을 갖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글을 배우면 풍부한 상상력을 발달시키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시키기보다 아이가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령, 만화영화 DVD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상을 외국어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갖습니다. 부모는 세상에 여러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죠. 이후엔 아이가 스스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초등학교 저학년을 지난 아이들은 자신의 성격과 학습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말과 글을 배운다. “두 딸은 외국어 학습 성향이 정반대입니다. 내성적이고 진지한 큰딸은 머릿속으로 분명하게 인지하고 나서 문장으로 표현해요. 공부할 때에도 새로운 구문을 접하면 사전을 찾아보고 회화에 적용하는 고전적인 학습방식을 선호하죠. 남이 볼 땐 답답하고 고지식해 보일 수 있지만, 기초부터 꼼꼼히 익히기 때문에 나중엔 외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 매사에 적극적이고 순발력이 뛰어난 작은딸은 처음 듣는 외국어도 즉석에서 잘 따라 합니다. 이러한 성향의 아이들은 외국어를 빨리 배우지만, 문법적 오류가 있는 문장을 쓸 때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죠.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외국어를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유 대사의 경험상 외국어 실력 향상에 가장 도움이 된 건 ‘소리 내 읽기’다. 그는 “소리 내 읽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구문이 제대로 쓰였는지, 발음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진단할 수 있다”며 “아이들은 특히 좋아하는 노래 가사나 대사 등을 그대로 따라 하며 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했다. “아이들의 외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외국어 말하기 대회, 시낭송 대회에 출전해 외국어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권유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며 외운 시나 원고는 외국어 실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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