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오피니언] 학교공간혁신, 성공의 열쇳말은 학생참여다
입력 2019.06.13 11:39
-수용·관리 지나 교육·생활 공간 탈바꿈 필요
-학교공간혁신 과정, 학생 주도적 참여 늘려야
  • #.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방현초등학교 복도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바닥에 앉아 책을 보거나 복도에 조성된 다락방에서 책을 읽었다. 식사도 복도에서 했다. 이곳은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교실 5곳을 학생중심으로 리모델링하고 복도에도 다락방을 마련하는 등 학교공간혁신에 나선 ‘꿈담’교실이다. 김아름(가명·8)양은 “다락방에서 책을 보는 게 제일 즐겁다”며 “더 많고 다양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가 변하고 있다. 교정시설을 방불케 했던 삭막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학생이 공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해 빈 교실이 늘고, 교과서 위주로 진행했던 수업에도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교육부는 학교공간혁신의 ‘큰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1월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학교공간을 혁신하는 사업으로, 18조9000억원을 투자하는 큰 규모의 사업이다. 올해 안에 학교 150곳의 교실을 개선하고, 2023년까지 학교 1250곳의 학교공간혁신을 이룬다는 목표다. 교실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를 바꾸기 위한 학교공간혁신도 2023년까지 500개 건물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지난 12일 건축전문가들과 학교공간혁신을 위한 MOU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학교가 사용자(학생) 중심의 창의적인 공간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나라 학교는 수용과 관리를 목적으로 해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목적엔 충실하지만 교육적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공간혁신의 총괄책임자로 선정된 이화룡 공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학교공간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쉬면서 생활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라며 “지금까진 팽창하는 인구를 수용하는 성격에 머물렀지만, 미래 교육에 대비하기 위해선 공간혁신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일선학교는 교육부보다 앞서 이미 학교공간을 혁신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펴낸 관련 사업 백서에 따르면 초등학교 4곳과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지난해 학교공간혁신에 나섰다. 이 가운데 도서관을 혁신한 봉원중학교는 혁신 전인 지난해 4월 2140명이던 도서관 이용자 수가 혁신을 마친 뒤인 올해 4월 2570명으로 약 20% 증가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은 학생의 참여다. 학생들이 학교 공간을 바꾸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학교를 자기 것처럼 느끼고 스스로 바꾸기 위해 문제를 찾는 것이 일종의 과정 교육이기 때문이다. 또 생각이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갈등을 조율하고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의사소통 과정도 학교 공간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육적 효과다.

    아쉬운 것은 이번 교육부의 학교공간혁신사업엔 학생참여를 보장할 확실한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건축전문가를 학교공간혁신 퍼실리테이터(촉진자)로 삼아 시공사와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자칫 학생참여가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는 우려가 남는다. 오히려 건축전문가 중심의 사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교육부보다 앞서 이미 학교공간혁신에 나섰던 학교는 공통적으로 건축전문가와의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한 초등학교 교감은 “학생의 요구를 수용해 전달하더라도 건축전문가의 전문적인 견해에 막혀 난항을 겪었다”며 “절충을 하다 보니 학생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사업의 중심은 학생이, 과정의 중심은 건축전문가가 아닌 학교가 돼야 한다. 특히 교사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건축전문가들과의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참여에 소극적인 학생들을 독려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건축전문가의 의견을 쫓는 형태로는 제대로된 학교공간혁신이 요원하다. 지난해 학교공간혁신을 이룬 광주 한 초등학교는 이를 위해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주로 관철하는 데 노력했다. 학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교를 바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견학도 수차례 다녀오고, 건축안에 대한 최종 결정도 학생들에게 맡겼다. 이 학교 교감은 “학교가 인내심을 갖고 학생의 참여를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공간혁신 사업은 교사의 편의나 아름다운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 아니다. 건축전문가가 전문성을 뽐내는 사업은 더더욱 아니다. 교육당국은 학생이 스스로 불편함을 해소하고 머물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전문가 보다 학생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사업진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