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육아 우울증’ 겪습니다”
입력 2019.05.09 09:40
-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에게 듣는 ‘아빠 육아 심리 조언’
  •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생각과 느낌 몸마음 클리닉 원장)은 두 아이의 주 양육자다. 아빠 육아 경험과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조언을 담아 ‘육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중앙북스)’를 펴냈다. / 최항석 객원기자
  • “육아할 때 느끼는 외로움, 우울감, 분노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겪습니다.”

    올해 6살과 8살 난 두 아이를 돌보는 아빠,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생각과 느낌 몸마음 클리닉 원장)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아빠 육아가 흔치 않았던 2012년부터 아이를 돌봐왔다. 아이의 안정적인 애착형성을 위해 이직 전까지 아이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게 계기였다. 기저귀 갈기, 목욕하기, 밥 먹이기 모두 그의 몫이었다.

    정 원장처럼 육아하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육아 휴직을 쓴 남성은 1만7천여 명. 전년도보다 50% 급증한 수치다. 육아 고민은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아빠들도 아이를 돌보며 겪는 외로움, 우울함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정 원장에게 ‘아빠 육아 심리 조언’을 구해봤다.

    ◇ 아빠 육아 우울증, 외출하고 자기 시간 갖길

    “육아 우울증은 여성의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편견 때문에, 아빠가 아이를 돌볼 때는 심리적 어려움이 덜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빠도 육아를 많이 할수록 우울증 경험 빈도가 높습니다.”

    아빠도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면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육아하며 드는 다양한 감정을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없어, 외롭다는 감정이 들고 심리적으로 취약해진다. 정 원장 또한 “육아 우울증을 경험했다”며 “아이를 온종일 보다보니 제 삶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왔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모든 게 귀찮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육아 우울증을 겪는다면 ‘아이와 하루 한 번 외출하기’를 원칙으로 삼는 게 좋다고 이야기 했다. 우울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도 바깥 활동을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돼 떼를 덜 쓰고 잠도 잘 잔다. 정 원장은 “어린아이일 수록 밖에 나가려면 준비할 게 많아서 귀찮겠지만, 그래도 양육자와 아이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챙기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수다. “24시간 동안 아이와 붙어 지낸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육아하는 아빠더라도 규칙적으로 아이와 떨어져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그 시간 동안 부족한 잠도 자고, 자기 취미도 조금씩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어 아이를 돌볼 때도 원활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어요.”

  • / 최항석 객원기자
  • ◇ 커뮤니티 참여하고, 육아 자부심 가져야

    엄마가 아닌 ‘아빠’이기 때문에 더 힘든 점도 있다. 우선 각종 ‘맘카페’와 같은 지역 커뮤니티가 아빠에게는 부족하다. 정 원장은 “지역별 카페나 모임이 있으면, 정보교류를 할 뿐만 아니라 위로와 공감도 받는다”며 “하지만 육아하는 아빠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일상을 공유할 아빠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부모와 교류 없이 아이를 돌봐서는 위험하다. “주변에 육아하는 아빠가 없는 것 같다고 체념하기보다, 교류할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를 추천합니다. 인터넷 아빠 카페에도 가입하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오프라인 모임도 나가보세요. 친구들과 아이 동반 모임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아빠들과 감정을 교류하며 외로움을 덜 수 있을 겁니다.”

    일부 아빠는 아이를 아내가 아닌 자신이 양육한다는 사실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그는 “맞벌이 부부 중에 수입이 적은 쪽이 주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내 능력이 부족해 아이를 돌본다’고 위축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마음이 들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억지로 육아하게 돼 아이와의 시간도 괴로워진다”고 했다.

    “아이를 돌보는 게 일하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힘들지만, 소중한 일을 내가 감당하고 있다 여기면 자부심이 들죠. 더불어 배우자나 주변 지인이 ‘잘 하고 있다’고 지지하거나 격려해준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 교육에서도 아빠 역할 커져야 건강

    자신과 아이의 정신건강을 챙기며 아빠 육아를 충실히 해왔던 정 원장이다. 엄마들이 주로 참여하는 어린이집, 유치원의 각종 행사와 모임에도 진료시간을 조정해가며 참여할 정도다. 최근에는 아빠 육아 조언을 담아 ‘육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중앙북스)’를 펴내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선배 아빠들의 얘기가 그대로더군요. 초등학생 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워킹맘보다 녹아들기 어려운 게 아빠입니다.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 교육에 약’ ‘아빠는 정보를 모른다’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엄마들 모임에 무리해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 교우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입니다. 이번 모임에는 아내를 보냈어요. 아이들과 쌓아온 관계를 생각하면 제가 주 양육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엄마에게 역할을 넘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빠가 교육에도 관여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마 위주의 커뮤니티는 정보를 얻는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아이 교육에 과몰입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서다. 정 원장은 “아이 교육에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할 것 같으니, 일을 안 하거나 줄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지출도 아이 교육비에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잃을 수 있다”며 “교육 문제도 아빠와 함께 결정할 수 있다면 엄마가 느끼던 책임이 분담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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