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우리는 박물관 가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을까
입력 2018.08.14 09:38
  • '1년에 책 몇 권 읽으세요?'

    이런 질문을 가끔 듣습니다.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편이라 그런가 봅니다. 어림짐작을 해보니 1년에 100권 정도의 책을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아닙니다. 재미를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면 독서를 지금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받는 독서 추천은 대개 입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입시에 진로 독서가 중요해지면서 '정답'에 가까운 책들을 추천해주는 거죠. 이런 책들은 제가 봐도 무겁고 부담스러운 책이 많습니다. '총, 균, 쇠'와 같은 책을 고등학생이 읽는다는 게 가능한가요?

    명사의 책 추천 코너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독자들이 읽고 싶은 책이라기보다, 추천하는 자신이 멋있어지고, 명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주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때 그렇습니다. 모두가 너무 폼 나는 책을 추천해서일까요? 한국의 독서율은 세계 최하위입니다.

    박물관, 체험학습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학창 시절 한국 학생은 열심히 체험 학습을 합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서 박물관을 즐겁게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성적을 내기 위해 억지로 가다 보니 싫어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죠.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뉴욕에 사는 닉 그레이도 그랬습니다. 박물관에 전혀 관심이 없었죠. 우연히 미술관에 관심이 많던 한 여성과 데이트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여성은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지식도 해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미술이 아니라, 다른 관람객은 관심이 없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품을 자신만의 맥락과 스토리로 묶어서 보여줬습니다. 닉 그레이는 박물관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후 닉 그레이는 미술관 투어를 테마를 통해 묶어서 자신만의 투어를 만드는 회사, '뮤지엄 핵'을 창업했습니다. 과학, 페미니즘, 역사 등, 독특한 주제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다양한 전시를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투어로 재가공해서 관객들에게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봤던 익숙했던 미술관이 테마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투어가 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덕분에 미술관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미술 투어에 관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뮤지엄 핵
  • 뮤지엄 핵이 만든 새로운 미술관 투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여지껏 우리는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몇몇 작품 위주로 봤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말이죠, 하지만 등수가 아닌 '취향'으로, 내가 관심 있는 '테마'로 정렬하면, 남에게 관심이 없는 미술품도 새로운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테마로 편집하느냐에 따라 같은 박물관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뀔 수 있게 되는 셈이죠.

    더 중요한 사실은 편집에 힘으로 미술에 관심 없던 사람도 미술에 대한 관심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술관은 여러 교육 활동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에게 '정답'이 있다고 강요하고, 취향을 무시해서 정작 공부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교육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교육 과정에서 독서를 강조함에도, 발전된 국가 중 가장 독서량이 적은 한국의 현실의 해답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독서든, 글쓰기든, 공부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죠.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입시 교육에서 가르쳐주는 '기본기'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인생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죠. 대학교 입시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이후에는 공부하지 않고 고등학생 때까지 배웠던 지식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100세까지 사는 지금과는 전혀 맞지 않죠.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어려운 책을 읽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책을 읽지 않게 되는 학생을 만든다면 이는 좋은 교육이라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맥락으로 편집한, 새로운 교육 또한 필요합니다. 지루하게 느껴졌던 박물관을 자유로운 맥락 연결과 스토리를 통해 즐거운 투어로 만든 뮤지엄 핵에 관심을 기울여 봄 직한 이유입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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