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스펙’이 되는 세상 꿈꿔요”
입력 2018.07.06 10:35
[사업·육아 동시에 잡은 ‘원더우맘’] ⑩ 이혜린 그로잉맘 부대표
  • 최근 창업 시장 내 엄마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과거 가정에 머물던 주부들이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들며 성공 사례들을 쏟아내고 있다. 결혼과 출산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키워가는 엄마 CEO들은 어떻게 자녀를 키우고 있을까. 조선에듀는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원더우맘(Wonder WoMom·원더우먼+엄마)의 자녀교육법을 듣고자 한다. 열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부모교육 컨설팅·육아 코칭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로잉맘의 공동창업자, 이혜린(32·사진) 부대표다.

  • 이혜린 그로잉맘 부대표는 "엄마들이 더는 엄마다움·여성다움을 강요받지 않고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 육아가 스펙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주민욱 객원기자
  • “엄마, 나 집에서 애 키우면 안 돼?”

    육아휴직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2015년 어느 봄, 이 부대표는 매일 사직을 떠올리고 있었다. 온종일 엄마만 찾고 바라보는 아이를 놓고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친정 엄마의 입에선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대개 ‘집에서 애만 보려고 지금껏 공부했느냐’ ‘그간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려 하느냐’ ‘엄마가 도와줄 테니 그런 생각일랑 접어둬라’ 등 매번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코 사직서를 냈다. 5년간 몸담은 회사, 취업난을 뚫고 공채로 들어간 첫 직장, 동기들과의 추억 등을 뒤로하고 ‘엄마’로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육아 고충 SNS 통해 엄마들 공감 이끌어내…‘창업’ 결심

    그렇게 그는 촉망받는 증권가 직장인에서 한순간에 ‘경력 단절 여성’이 됐다. 물론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아이는 태어났고, 육아휴직 이후 막상 아이를 두고 직장으로 돌아가자니 덜컥 겁이 났다. 고작 돈 몇 푼 벌자고 갓 돌 지난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친정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이 부대표는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당시 제가 하던 일이 전혀 즐겁지 않았고, 조직의 소모품으로 계속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며 “수많은 고민 끝에 ‘2년만 아이 키우는 데 집중하고, 이후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롯이 엄마로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승진 소식이나 동기들이 일하는 얘기를 듣는 날이면, 이불 속에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집에서 쉬니 좋겠다고 말하는 주변의 시선도 견디기 어려웠다. 이 부대표는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언젠가부터 ‘난 여기 이렇게 멈춰 있는데 세상은 계속해서 달려가는 기분’이었다”며 “그때 문득 다시 뭐라도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육아 고충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 개인피드에 올렸다. 평소 일명 ‘독박육아’로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재미있게 풀어내자, 수많은 엄마에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쌓여 탄생한 페이스북 페이지 ‘내가니엄마’는 사진이나 영상 없이 오직 글로만 구성됐음에도 콘텐츠 합산 500만 뷰를 이뤄냈다.

    “독박육아 속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아닌 저 자신으로 살아가려면, 계속해 저를 담금질하고 다시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죠. ‘내가니엄마’는 바로 그런 새로운 생각을 적어내는 공간이 됐어요. 출산 후 경력단절, 워킹맘의 비애, 독박육아의 서러움 등을 글로 표현했죠. 후련했어요. 또 이를 함께 공감해주는 엄마들을 보면서 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이때부터 엄마를 위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주민욱 객원기자
  • ◇ 부모 위한 일 계속 하고파

    이 부대표는 현재 부모교육 컨설팅·육아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로잉맘’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겪는 육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라인 육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선보이며 수많은 엄마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이처럼 어려운 도전을 선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올해 네 살(딸)·8개월(아들) 된 그의 두 자녀의 공이 컸다. 그는 “스타트업은 제 오랜 꿈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선뜻 나서지 못했다”며 “하지만 엄마가 되면서 이전과 차원이 다른 강력한 끈기와 인내 속에서 살다보니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 스스로 엄마이기에 엄마들의 고충을 세심하게 이해하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창업 이후 그의 교육관도 바뀌었다. 아이가 어리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도와주기보다는,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만 이끌어주되 나머지는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자고 다짐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도전하면서 남다른 열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청춘들을 자주 본다”며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부모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많이 줬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주도성’과 ‘자율성’을 키워 주려고 노력해요.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기가 마실 물은 직접 떠다마시고, 입고 싶은 옷 정도는 스스로 선택하고 입도록 기다려 줍니다. 부모의 역할은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는 앞으로도 부모를 위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자신처럼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을 돕는 ‘리턴십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해본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끈기 있게 지켜왔으며, 수많은 고비를 담대하게 넘겨왔죠. 우리 회사에서 육아는 가장 큰 스펙이에요. 앞으로 사회에서도 육아가 멋진 스펙으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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