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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서울 옥수초 VR 스포츠실 수업 현장에서 한 학생이 정답을 신중히 고민하며 공을 찰 준비를 하고 있다. /신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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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캔은 자석에 붙지 않아!”
“정답은 ‘X’야, 그쪽으로 공을 차!”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옥수초등학교 ‘VR(가상현실·Virtual Reality) 스포츠실’에서 진행된 3학년 3반의 수업 현장. 가로 4m, 세로 2.8m 크기의 거대 스크린에 ‘알루미늄 캔은 자석에 붙는다’는 O/X 문제가 나오자, 한 학생이 스크린 속 ‘X’를 향해 힘껏 공을 찼다. 정답을 맞히자 대기하며 서 있던 교사와 학생 20여 명의 탄성이 쏟아졌다. 이날 진행된 VR 스포츠실 수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정답을 맞히려 신중히 공을 차는 학생과, 이를 지켜보며 친구를 열심히 응원하는 학생들의 눈빛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지난해 2학기부터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인 서울 옥수초의 VR 스포츠실은 가상현실 기술과 특수센서를 적용해 일반 교실 크기의 실내에서 학생들이 스크린 상의 가상 목표물을 향해 공을 차거나 던지는 등의 신체활동을 할 수 있게 조성된 체육 공간이다. 몸이 불편해 체육 시간 참여를 꺼렸던 취약 아동이나 낡고 오래된 체육시설, 공간부족 등 학교 체육 수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문체부가 기획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프로젝트를 맡아 만들어진 VR 스포츠실은 쉽게 말해 '스크린 골프'와 비슷하다. 이에 스크린 골프처럼 날씨 등 외부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실내체육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미세먼지 기승으로 위축된 체육 수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옥수초의 경우, 일주일에 한 시간씩 담임교사의 재량에 따라 콘텐츠를 선택해 수업하고 있다. VR 콘텐츠는 준비운동서부터 ▲한글 해저 탐험 ▲박 터트리기 ▲도둑 잡기 ▲한글 버스 여행 ▲독도 바로 알기 ▲축구 페널티킥 등 다양하다. 이현준(3학년)군은 운동장보다 VR 스포츠실 내 체육 활동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운동장 체육 수업에서는 공을 던지면 서로 주우러 다니기 바빠요. 하지만 여기선 공을 잡을 기회가 훨씬 많죠. 그렇다 보니 공을 던지고 차는 데 자신감이 생겼어요. 또 운동장에선 넘어지면 바로 쓸리고 다치는데, 여기선 넘어져도 크게 아프지 않아요.”
하지만 학교 현장 내 VR 수업 도입에 대해 마냥 환영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새로운 기술을 통해 구현된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점차 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해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VR 스포츠실을 직접 경험한 서은미(3학년 3반) 교사는 “VR 콘텐츠가 현실 세계와 너무 동일하거나 폭력성과 공격성을 내재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활용 중인 콘텐츠는 아이들 학습 능력 향상과 신체 발달을 위해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위험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VR 융합교육 콘텐츠를 통해 아이들이 쉽게 학습 정보를 이해하고, 배운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각인효과를 주는 등 학습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때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옥수초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VR 스포츠실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전체 학생의 90%가 VR 스포츠실 체육 수업에 만족하며, 기초체력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옥수초 4학년생 딸을 둔 한 학부모는 “여자 아이다 보니 체육엔 흥미가 없고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VR 스포츠실이 운영되고 나서는 방과 후 친구들과 종종 공을 던지고 온다고 하더라”면서 “또 연일 계속되는 고농도 미세먼지로 인해 늘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걱정없이 아이가 즐겁게 운동할 수 있어 안심된다”고 했다.
옥수초는 앞으로 학교 내 VR 스포츠실 활용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고영규 교장은 “현재 수업 외에 중간놀이 시간과 방과 후 시간에도 VR 스포츠실을 개방해 아이들이 VR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또 안전사고와 게임 중독 등을 대비하기 위해 VR 콘텐츠 전담 교사를 VR 스포츠실에 상주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체부 역시 올해 특수학교 등을 대상으로 10개교에 VR 스포츠실을 우선 지원하고, 내년부터 일반학교를 대상으로 지원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또한 체육 수업뿐 아니라 다른 교과에도 VR 스포츠실이 활용될 수 있도록 교육부 또는 교육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최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외부활동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VR 스포츠실은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사회적 약자를 우선으로 고려해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서울 옥수초 ‘VR 스포츠실’ 수업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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