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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빠 전영철씨가 손녀 한서현양과 함께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임영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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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부모처럼 맡아서 교육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이들은 대개 억척스럽게 자녀를 키우며 우리나라 교육 열풍을 주도했던 50~60대 베이비붐 세대다. 본인들의 이런 경험이 손주 교육에 열정을 쏟는 배경이 됐다. 조선에듀는 맞벌이 부부 시대에 실질적인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전직 교수에서 격대교육(조부모가 손주에게 친근한 정서를 바탕에 두고 교육을 하는 것) 예찬론자가 된 ‘할빠’ 전영철(64)씨다.
◇육아부터 교육까지 도맡아
전씨는 외손녀 한서현(7)양을 10개월 때부터 맡아서 키웠다. 산후통으로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워서였다. 사위는 지방에서 근무해서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울 형편이 못됐다. 불가피하게 일찍 퇴직하고 2010년부터 딸 내외와 함께 살며 병수발과 육아를 동시에 책임졌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VR게임개발과 교수였던 전씨는 “힘들어하는 자식을 보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며 “주변에서는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늙어서 무슨 고생이냐고 반대했지만, 손녀와 함께하는 것이 축복일 거라 믿었다”고 강조했다.
기저귀를 가는 것부터 이유식을 먹이는 것까지. 웬만한 엄마 못지않게 육아에 전념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는 시장에 가서 먹일 음식과 육아용품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막막함이 컸지만 예상보다 빨리 적응했다는 전씨는 “내 자식을 키웠던 젊은 날에는 아내에게 일임하거나 옆에서 간단히 돕는 정도였기 때문에 사실상 생애 첫 육아나 다름없었다”며 “육아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틈틈이 책을 보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고 말했다.
다소 손이 덜 가는 4살 무렵부터는 놀이전도사를 자처했다. 손녀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 3~4시간 동안 병원놀이, 딱지치기, 모래 장난 등을 하며 오롯이 놀아줬다. 함께 애니메이션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껏 같이 웃어주기도 했다. 6살부터는 도서관, 과학관, 생태공원, 대형마트 등 하루에 한 곳 이상을 찾아가 체험학습을 했다.
“격대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조부모의 풍부한 경험이 손주에게 전해진다는 점이에요. 다양한 경험을 한 조부모는 부모보다 아이에게 들려줄 얘기가 많죠. 예컨대 마트에 가서는 매대에 놓인 채소나 과일을 보면서 관련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고구마가 뿌리채소인지 줄기채소인지, 과일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등등 말이죠. 거창한 학습은 아닐지라도 이런 산지식이 분명히 손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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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시간 확보해야 육아 스트레스 없어.
손녀와 함께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지만, 그는 하루에 한두 시간만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손녀가 일어날 때까지 책을 읽고, 손녀가 학원 간 사이 취미생활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손주를 돌보는 많은 조부모가 자유시간이 없어서 힘들어합니다. 늘 손주한테 얽매어 있어야 한다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커지죠. 아무리 예쁜 손주라지만 24시간 매일 함께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저는 일정시간을 반드시 저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제가 힘들면 아이와 아이의 부모까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있어요.”
그가 세운 원칙이 하나 더 있다. 조부모는 어디까지나 보조양육자라는 점이다. 부모를 돕는 입장이어야지, 부모 이상으로 간섭하거나 본인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부모 양육은 아이와 부모의 유대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멈춰야 합니다. 주변에서 손주 양육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경우를 보면, 교육관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양육을 하다 보면 부모와 교육방식이나 육아 방식에서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때 저는 되도록 부모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부모가 가진 양육법은 30여년 전의 것이고, 그 사이 환경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리고 결국은 조부모보다 부모가 아이를 끝까지 교육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정한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따라야 일관성 있는 교육이 가능하며 아이의 혼란도 막을 수 있습니다.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요.”
그는 손녀를 보면서 딸과 이전보다 훨씬 더 친해졌다. 손녀의 교육을 위해 딸과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전씨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쯤 ‘오늘 서현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은 지’, ‘앞으로 어떻게 키우면 좋겠는지’ 등을 논의한다”며 “이런 대화를 통해 서로 생각을 알 수 있고 부족한 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손녀와 함께 한 일상을 육아일기(blog.daum.net/edusilver)를 쓰면서 기록하고 있다. 벌써 6년째다. 처음에는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주변에 격대교육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가 소문이 나자 요즘은 손주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점을 질문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꽤 생겼다.
“손주를 보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보람이 있어요. 손주를 보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을 정말 실감하게 됐습니다. 먼 훗날 손녀도 지금 저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라 생각하면 없던 힘도 생기지요. 손주의 육아를 놓고 고민이 많으신 분이라면,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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