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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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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이 누구에게나 필수가 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 교육의 목표는 시민들에게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해주는 것이다. 마치 물리교육이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해주듯이, 그런데 그 시각이란, 근본을 알아내려고 뒤로 물러날 때 더 넓은 부채꼴을 그리며 많은 것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IT 관련 서적에 대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개인적으로 친한 국어의 기술의 저자 이해황 씨로부터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입니다. 서울대 컴공과 이광근 교수님이 쓰신 ‘컴퓨터 과학이 여는 세계 : 세상을 바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원천 아이디어 그리고 미래’(인사이트)라는 책입니다.
도입부의 인용문은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컴퓨터가 만드는 미래에 대해 넓고 근본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저술했다는 아주 인상적인 서문 중 제가 발췌한 것이지요, 이 교수님은 군데군데 시(특히 고은 작가님의 시)도 인용되며 인문학적 소양을 다분히 드러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은 컴퓨터를 마음의 도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물리적인 도구가 아니라 마음의 도구라는 것. 컴퓨터를 다룰 때 사람들은 물리적인 근육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컴퓨터는 물리적인 도구라기보다 정신적인 도구라는 느낌은 저 개인적으로도 자주 그리고 많이 받습니다.
저는 문과 출신으로 기자 생활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컴퓨터 정보 통신 IT 분야를 취재하며 보냈습니다. 컴퓨터는 겉으로 보면 이과지만 속을 파헤쳐 보면 문과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컴퓨터 과학이라는 학문이 전형적인 문이과 융합 학문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기술의 진보 못지않게 기술이라는 그릇에 담는 내용물 컨텐츠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컴퓨터는 그 자체로는 아무 말을 못 합니다. 게임이든 워드 프로세서 등 소프트웨어를 만나야 인간에게 의미가 생기는 것이지요. 3D 가상현실 등 기술은 기술만으로 별개의 세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게임 속 VR처럼 컨텐츠를 제대로 만나야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럴 경우 컨텐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야기가 되겠지요. 이야기는 바로 언어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그 분의 다음과 같은 말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컴퓨터가 읽는 텍스트는 우리에게 문학과 같다."
지난 4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방한했을 때 기자들은 책 내용보다 AI와 인공 지능에 대해서 질문을 퍼붓더군요.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저자에게 말이지요. 그만큼 AI의 발전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몰려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가장 큰 이유는 구글과 알파고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알파고 이전(2015년 6월)에 출간된 책이지만 마침 그와 관련해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등장합니다. 다음은 이 교수님이 예측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있을이 아니라), 기계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지능입니다.
1. 더 나은 것을 상상하는 능력
2. 그래서 현재를 회의하고 의심하는 능력
3. 그래서 묻고 따져 나서는 능력
4. 다양한 지식을 버무려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
5. 관계 없어 보이는 지식들 사이의 관련성을 창조하는 능력
6.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
7. 알고 싶은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자각하는 능력
8. 그래서 질문하는 능력
9. 그 질문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
윤흥길씨의 소설 제목처럼 ‘아홉 개의 능력으로 남은 인류’가 되겠네요. 인간은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고(항상 지금이 불만이죠. 그래서 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현재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그 현실이 최선인지를 묻고 따집니다. 그 다음에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지식들을 이리 저리 조합해 보고 관련성이 없는 두 지식 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으로 AI가 인류에게 아직 밀리고 있는 영역입니다. AI는 아는 것을 알죠. 모르는 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는 다릅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즉 미지의 지식에 대해서 인식을 할 수 있고 그래서 그 지식을 얻고자 갈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묻고 또 묻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타인을 설득하고 그래서 그들을 자신처럼 현실에 불만을 갖고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존재로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대표적으로 책에 소개된 튜링)이 모여 컴퓨터를 만든 것이죠. 이를 인류의 진보라고 평가한다면 그 진보는 바로 인류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그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가 창의성의 연대를 이룬 결과라고 부를 수 있겠죠.
하지만 컴퓨터는 불만이 없습니다. 물론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처럼 언젠가는 불만을 지닌 AI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는 요원합니다. 컴퓨터, 잘 나 봐야 컴퓨터일 뿐이죠. 이 교수님은 컴퓨터의 이런 놀라운 능력(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들뢰즈의 연쇄와 계열 개념을 동원해 멋지게 비유하시더군요.
컴퓨터로=자동적으로=기계적으로=풀 수 있는
물론 이 책에는 이과생 그것도 수학을 아주 잘 하는 학생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수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복잡도 알고리즘이니 다항 알고리즘이니 양자 알고리즘이니 하는 용어들을 책만 읽고서는 저 같은 문과 출신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언어와 논리의 세계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컴퓨터 공학의 세부적인 알고리즘까지 책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교수님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는지 그 의도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진술이었죠.
“예술은 동요시키고 과학은 안심시킨다.”
책 속에서 사용된 수많은 시들이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표상한다면 수식과 함께 등장하는 알고리즘의 세계는 그런 불안을 안심시키려는 컴퓨터 과학자의 메카니즘이자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컴퓨터는 지식의 확장과 심화이며 인간의 놀이 본능과 소통 본능을 해결해주는 도구인 것 같습니다. 실제 컴퓨터 게임이 그렇습니다. 이미 컴퓨터 게임은 인류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 컴퓨터를 지배하는 것, 아니 그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인류의 불만이었습니다. 인류가 위대하다는 것은 인간의 불만이 위대하다는 말과 같은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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