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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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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2016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13위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책 역시 지난 2014년 통계에서는 20위 권 밖에 있다가 이번에 20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인 거지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여러분 카프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난해함, 복잡함, 괴상함 이런 이미지들이 아닐까요? 카프카의 변신은 초등학생도 읽는 동화책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카프카는 JD 셀린저, 사무엘 바케트 조지 오웰 같은 소설가들의 소설가이며 팀 버튼,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영화 감독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죠. 하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버거운 존재입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학위 논문이 가장 많은 작가가 된 것 아닐까요? 저는 아메리카, 성, 심판, 변신 등 주요작들을 대부분 읽었지만 추론하면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독자들에 대한 배려,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 필수적인 흡인력은 애초에 고민하지 않고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영미 지역에서 카프카는 훨씬 더 쉽고 대중적으로 읽히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미국 대학에서 문학 수업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텍스트인데 보스턴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베스트 셀러 저자 윌리엄 케인에 따르면 카프카를 싫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독창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프카 글의 장점은 내용 구성 문체 주제 등 모든 면에서 독창성이 느껴진다는 사실이겠지요. 반면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 설명이 부족하고 사랑도 없고 관계도 없다는 점에서 메마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약점이죠.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단 하나, 재미가 없다고 하면 카프카 자신도 동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성’을 가장 좋아합니다. 인간 소외보다는 관료주의가 개인적으로 끌리는 주제이기도 하고 오로지 성에 들어가려고 애쓰다 결국 성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 채 끝나고 마는 K에 대해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카프카’는 결국 성에 들어가게 되더군요. 실제 생기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책은 ‘변신’과 ‘시골의사’라는 단편입니다. 시골의사가 왜 그렇게 많이 발견되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국내에 발간된 책이 변신과 시골의사를 묶어서 출간되었기 때문이더라고요.
변신은 “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문학 사에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죠. 노동 인간 소외 가족의 붕괴 현대인의 불안 등 익숙한 테마들을 찾아낼 수 있기에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 논술이 강조되던 시대에도 변신은 꾸준히 읽혔습니다. 그럼 실제 서울대 지원자들은 변신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두 사례를 비교해 보실까요?
사례 1)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주인공의 가족이라도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중략) 뚜렷한 선악구도가 존재하지 않고, 현실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하략)
사례 2) 이 책을 읽으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더욱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 책을 통해서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학생은 비슷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이 드러나는 카프카의 소설을 관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지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발생합니다. 앞에 학생은 그레고리 잠자는 피해자, 기족은 가해자라는 통념적 시각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예리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사례 2의 학생은 공동체 속에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평이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죠. 자소서 만으로 드러나는 사유의 깊이와 성숙도라는 점에서는 분명 사례 1의 학생이 더 우수해 보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헤세의 데미안처럼 많은 학생들이 읽고 쓰는 책들은 익숙하다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비슷하게 쓸 수 있다는 위험성이죠. 하지만 고민의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어떻게 다르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고 사례 1의 자소서는 그것을 말해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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