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복권이 있다. 세 번 연속 모든 참가자 중 4% 안에 들어야 한다. 복권을 사는 사람이 매년 15만명 안팎일 때, 당첨 확률은 대략 0.008%다. 10만명 중 8명만 복권 당첨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복권의 상품은 6년간 1억 8백만원을 지출했을 때 주어지는 직업 선택의 기회다. 그런데 만약 목표와 비전이 없다면 이 확률을 인생을 걸만한 투자라고 여길 수 있을까?
이런 확률은 로또 2등 당첨 확률과 비슷한 수준이며, 동물로 말하자면 10만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나는 ‘백호’ 탄생 확률과 근접하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확률을 이겨낼 경우,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기적’이다.
그런데 매년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학생들을 연세대학교 의대(서울) 학생부 교과전형에서 만날 수 있다. 매해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수능 최저등급인 세 과목 1등급(4% 이내) 제한을 뚫으며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학생들 아닌가? 하지만 이런 최우수 인재들의 의대 지원에 대해 사회와 교육계의 염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국의 의대 정원은 전년에 비해 7.6%가 늘어난 36개 대학교 2,255명이다. 의대의 정원 확대는 기회와 손실을 동반한다. 기회는 최우수 인재들의 의대 선택에 따라 이공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이공계 지원 학생들의 진학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는 점이다. 반면, 국가 과학기술에 이바지할 최우수 인재들이 의료 서비스업으로 빠져나간다는 손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국가에서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이에 올해 모든 과학영재학교는 입학설명회에서 의대에 대한 수시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과학고도 동일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인기에 대한 교육계와 학계의 걱정은 또 있다. 서울공대 현택환 교수는 ‘축적의 시간’(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식노마드, 2015)이라는 책에서 한국 의대는 MD(Medical Doctor)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PhD(Doctor of Philosophy)가 기를 펴고 연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IT와 빅데이터가 연계된 새로운 의료 사업에 대한 개척이 시급하기 때문에, 의대를 가더라도 융합 연구에 주력하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우려는 의대의 지나친 인기가 학생의 진로·진학에 대한 목표와 정책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사회의 기능 및 인식이 올바르다면 이공계 인재가 의대에 가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의 욕심 또는 강요된 선택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실제로 의과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자퇴율은 약 2% 전후다. 100명 중 2명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다.
2012년에 발표된 서울대 계열별 수석합격자 중 이과 수석 학생의 학과가 논란이 되었었다. 당연히 ‘의대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석이 ‘수의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의사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기적같이 뛰어난 머리로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노력한 그 학생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지 않을까?
학생들의 꿈을 향한 열정은 어렵고 힘든 입시를 지나갈 수 있는 동기가 되어준다. 학생의 꿈을 물어보고 존중하고, 그 선택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같이 찾아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자녀는 또 다른 내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 꿈과 열정이 학생 안에서 즐겁게 춤출 때 우리는 ‘백호’가 태어나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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