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새삼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입력 2014.12.09 09:45
  • “내 뼈는 고통받기 위해 만들어졌고/내 이마는 상념을 위해 만들어졌다.” 격랑의 시대를 살다간 스페인의 천재시인 미겔 에르난데스는 자신의 육체가 고통을 위해 탄생했다고 노래했다. 스페인 내전에 투신했던 그는 32살에 옥사했으며, 그의 후기 시는 고통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예감들로 채워져 있다.  

    상처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시인의 표현처럼 생존이란 크고 작은 상처라는 숙명을 매일 디디며 지속되는 인간 과정일 것이다. 상처를 야기하는 사건과 시간, 상처 입고 힘들어 하는 나날, 상처들로부터 벗어난 안도의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독일문학가 아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Was Traurig Macht>이라는 에세이는 사실 독일어권에서는 그리 알려진 글이 아니다. 새로운 국어교과서를 배운 젊은 세대 역시 잘 모를 글이지 싶다. 20세기 초 당대 이름 난 수필가였던 김진섭이 이 글을 번역해 발표하며 교과서에까지 실렸고 그 후 이글은 많은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인생은 고통이라고 믿는 우리 정서에 잘 들어맞는 데다 청천 김진섭의 번역이 워낙 출중해 그랬을 듯싶다. 꿈을 잃고 우울했던 십대 시절, 이 글은 내 심장에도 찌릿하게 와 박혔다. 특히 첫 부분은 40이 넘도록 잊히지 않는다. 

    “정원(庭園)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죽음과 고독의 슬픔에 대해 너무도 간명하게 일깨워주는 글귀였기 때문이다. 시인 이상이 슬프고, 윤동주가 슬프고, 유재하가 슬프고, 기형도가 슬프며, 김광석이 슬픈 이유, 이름 모를 청춘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들이 한없이 슬픈 이유는, 그들의 생이 죽음과 고독이라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폭력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김광석에 대한 슬픈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처 몰랐던, 그의 깊은 고민의 한 자락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래서 한동안 몹시 또 슬펐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에는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 케이블방송사가 주관한, 그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이 노래가 너무 자신을 닮아서, 아니 자신이 너무 이 노래를 닮아가고 있어서 한 동안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었다는 농담을 전했다. 그는 무척 우울한 사람이었고, 그의 죽음은 그의 짙은 우울감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평균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조금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그였기에 이 노래는 더욱 더 짙은 울림을 준다. 이별은 인간이 살며 극복해야 할 심대한 과제이다. 사람,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물이나 생각들과 우리는 매일 조금씩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쉽게 잊히는 이별도 있지만,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별 또한 부지기수이다. 어떤 것들과 제대로 이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마음을 다치기 쉽다. 사별이나 이혼, 별거, 가족의 사망과 같은 이별 사건은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 지수의 최상단을 차지한다. 특히 사랑하던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더 그렇다. 이른 죽음이 슬픈 까닭은 그것일 것이다.

    1996년 김광석의 죽음은 적어도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극단적인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크나큰 사건이었다. 최근 들어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를 들을 때 떨려오는, 남모를 찌릿함의 이유를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성숙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어제 죽어간 사람들의 꿈에는 평범한 생을 살며 감동을 느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항상 서려있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닫는다. 이것이 내 남은 생에 충실한 절실한 근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김광석이 죽기 전, 이 노래를 부르며 가족과 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을 느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떠난 김광석의 사진들 가운데는 어린 딸을 안고 해맑게 웃고 있는 것이 있다. 그 딸에게는 발달장애가 있었다. 얼마 전에, 꽤 오래 전에 씌어진, 김광석의 남겨진 가족에 관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김광석이 죽고 딱 10년이 지난 시점의 기사였다.

    “노래를 부를 때 감정 표현이 인위적이지 않고 살아 있어요. 겉으로는 밝지만 내성적인 면도 제 아빠를 쏙 빼닮았지요.”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딸이 어머니는 안쓰럽다. “서연이가 아빠의 영상을 보면서 노래 듣기를 좋아하지만 홀로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부터는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서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요즘도 서연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 ‘기다려줘’를 울면서 보고 듣는다. ‘기다려 줘. 기다려 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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