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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에 대한 열기가 유래 없이 뜨겁다. 독서치료와 관련된 글이나 정보를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한다. 임상에서 독서치료를 실제 진행하고 있는 상담가 입장에서 반갑고도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독서치료에 대한 정보를 접할 때마다 적잖은 실망과 우려를 느낀다. 악화가 양화를 제압하는 것이 이런 건가 싶어 씁쓸할 때가 많다. 독서치료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독서치료에 대해 바른 설명을 담은 정보를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아주 별난 사례나 적절치 않은 견해가 독서치료의 전부인 양 회자되는 경우도 많고, 진상과 거리가 먼 사실을 사실처럼 적는 내용도 많다. 그 이유는 독서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정보를 함부로 퍼트리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치료는 단순히 독서와 심리상담이 결합된 형태가 아니다. 단지 책을 이용한 상담을 독서치료라고 지칭해서는 곤란하다. 마술처럼 심리회복을 극적으로 일으키는 치유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심리상담을 위해 편의적으로 책을 이용하는 것을 무작정 독서치료라고 부를 수도 없는 까닭이다.
독서치료가 현실에서 잘 체현된 영국의 경우, 임상장면을 보면 독서치료를 수행하는 주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외형상 독서치료 모임은 여느 독서모임과 다르지 않다. 권위 있는 독서치료사가 치료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있게 공유하는 독서치료 모임이 존재하고, 독서치료에 식견을 가진 간사가 그 모임을 이끌며 더 풍성한 대화를 이끌어낸다.
이런 모습에서 독서치료의 바른 정의와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독서치료의 근간은 모임에 참가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변화이다. 중요한 것은 치료사나 치유서가 아니라, 책읽기를 통한 독자의 내적 변화인 것이다. 이때 독서치료 간사의 역할은 오로지 치유적 독서수용이 독서대화를 통해 보다 활성화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독서치료사가 내담자의 심리문제를 치유서를 통해 완화시키는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사실이다.
물론 이는 독서치료 간사의 역량이 부족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독서치료 활동을 더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주재 간사의 남다른 전문성과 식견이 요구된다. 그들은 대개 독서치료와 독서학에 대해 충분히 수련을 거친 이들이다. 적절한 치유서를 고르고 정하는 기술을 숙지하고 있고, 독서가 개인의 영적, 내적, 인지적 변화를 이끄는 과정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다만 독서치료는 독서치료사와 내담자의 일 대 일 대면을 의미하기 보다는, 책이라는 치유매체를 독서행위 안에서 보다 치료적으로 펼쳐내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치유서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측면이 존재하기도 한다. 임상적 심리상담에서 치유는 상담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의 치유 트렌트는 자기치유의 강화이다. 마음챙김 명상이나 긍정심리치료, 생활개선치료와 같은 내담자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치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탁월한 전문상담가라도 주 한 시간 남짓의 대면 상담만으로 전면적이며 역동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내적 치유란 근원적으로 내담자가 스스로 해야 할 권리이자 소명이다. 따라서 치유서는 상담가가 상담에서 대화나 설명으로 모두 풀지 못하는 치유의 기술과 상징, 교훈을 상담실을 벗어난 일상에서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음챙김 명상이든, 긍정심리치료든, 생활개선치료나 인지행동치료에서든 내담자의 부정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켜줄 독서를 촉구한다. 감성적 뇌와 지성적 뇌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고, 세상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변화시킬 사유혁신을 책을 통해 얻도록 주문하는 것이다.
내 경우, 최초 일 대 일의 대면 상담으로 시급한 정서문제를 완화한 후, 일정 기간 개인 독서치료를 진행하다가, 충분히 자생성이 회복된 후에는 ‘본격적인 독서치료’ 모임에 참여하도록 돕고, 이후에는 치유서를 통한 자기치유 활동을 강화하게끔 전체 치료를 구조화하고 있다.
독서치료는 심리문제를 겪는 독자가 독서가 가져다주는 울림에 마음을 온전히 내맡기는 융합적 정신역동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미지처럼 병약한 정신병 환자를 위엄 있는 치료사가 좌지우지하며 치료를 집행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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