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덜 먹고 덜 입어도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의 미래에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바로 교육 아니겠는가. 어디 가서 빌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고 최고로 우수한 사람이 되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세대를 우리의 부모들은 지나왔다. 그리고 그게 정말 정답인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참 희한하다. 왜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일까? 분명 내가 노력하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면 우리 아이들이 공부할 줄 알았는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공부랑 영영 멀어지려 하니 말이다. 우리 아이, 참 밝고 명랑하고 참 좋은 아이이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참 예쁘다. 공부 얘기만 안 하면 말이다. 공부 얘기만 나오면 도끼눈을 뜨고 대들거나 내 속을 뒤집는다.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스마트폰에 TV인지. 좋다는 학원도 다니고, 밤마다 앉아는 있는데 왜 성적은 안 오르는지 답답한 마음에 몇 마디 하면 이내 곧 싸움이 된다. 참고 있자니, 우리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는데, 대체 어떤 해법이 필요한 것일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디 가서 용한 점쟁이라도 만나 속을 풀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기도가 아직 부족한 건 아닌지, 내 탓도 하게 된다.
자, 지금부터 마음을 좀 바꾸자.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과거 우리 부모 세대의 그것과 지금과 크게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아이는, 분명 달라졌다. 시대가 달라졌고 세상이 달라졌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그전에 해왔던 대로 아이들을 대하기만 한다. 요새 아이들, 다르다. 당돌하고 나름 합리적이고 자신의 주장도 잘만 편다. 입만 열면 할거라는 대답도 술술이고 논리도 나름 있다. 부모가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욱한다. 왜 나만 공부해야 하는지, 세상은 뭔가 부당하고 자신을 옥죄는 듯 하며, 권리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 나온다. 이런 친구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말부터 바꿔보자. “공부 좀 해라.” 라면 아이들이 뭔가 자신의 희생이 강요당한다고 느낀다. “우리 같이 공부하자.”로 바꿔보라. 물론 이건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말한 건 지켜야 한다. 부모도 같이 진짜로 공부해야만 한다.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 공부하라니,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는 정말 수능을 향한 것만이 공부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아이들이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만 공부하라고 해서 억울했던 아이들에게 함께 말해보자. ”우리 같이 공부하자. 나도 공부할 거거든.”
지금부터 칼럼 시작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 함께 공부해보자.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과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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