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시작돼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수도 파리를 구한 게 자동차라면 믿을 수 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제4군단을 프랑스로 진격(進擊·적을 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감)시켰다. 당시 독일군은 벨기에를 손쉽게 뚫고 파리에서 동쪽으로 150㎞ 지점에 있는 마르느강까지 단번에 진출한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르느 국경을 수비하던 프랑스 제6군단도 독일군의 세력에 밀려 후퇴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파리는 당장 독일군의 손아귀에 넘어갈 위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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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군에 맞서 프랑스군이 파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파리의 ‘택시 부대’ 덕분이었다. 속도가 느린 기차를 대신해 자동차가 군사들을 전쟁터로 신속하게 이동시켜 기습 작전을 가능케 했기 때문. 사진은 파리역 앞에 집결한 택시 부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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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조셉 조프레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추가 병력을 급히 파견하기 위해 파리에 1만2000명의 보병(步兵·육군의 주력이 되는 전투병)을 모이게 했다. 하지만 하룻밤 새 수많은 병력을 독일군 모르게 마르느 전선으로 옮기는 건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기차로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인원은 많아야 6000명 정도. 게다가 최고 시속 25㎞를 넘지 못할 정도로 느려 하룻밤 사이에 이동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골치를 앓던 조프레 장군에게 조셉 갈리에니 파리 방위군 사령관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조프레 장군 각하!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기차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수송할 수 있는 방법이 있소? 그게 무엇이오?”
“기차보다 곱절 이상 빠른 자동차를 동원하는 겁니다.”
“뭐요? 6000명이 넘는 병사를 단숨에 실어나를 자동차를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파리에 있는 모든 택시를 불러모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6000여 명은 기차로, 나머지 6000여 명은 자동차로 수송하자.’ 갈리에니 장군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급한 대로 전쟁터에 특공대를 파견해 기습 공격을 하기엔 적절한 전략이었지만, 프랑스군엔 수천 명의 병력을 옮길 만한 자동차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택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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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군을 태우고 마르느 전선으로 향하는 택시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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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에니 장군은 즉시 징발(徵發·국가에서 특별한 일에 필요한 사람이나 물자를 강제로 모으거나 거둠)대를 편성해 파리 시내로 보냈다. 확성기와 알림 쪽지를 통해 시민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한 택시 기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 금세 650여 대의 택시가 모여 들었다.
택시들은 각각 다섯 명씩의 보병과 무기, 탄약을 싣고 최고 속력 70㎞로 병사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택시는 빠른 속력을 무기로 프랑스군을 독일군 몰래 재빨리 투입할 수 있었다. 결국 승리를 확신하며 긴장을 늦추고 있던 독일군을 무찌르고 파리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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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부대의 70%를 차지했던 르노사(社)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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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택시 부대는 파리 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금의환향(錦衣還鄕·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해 고향에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했다. 훗날 이 택시들은 ‘파리의 택시 부대’ 또는 ‘마르느의 택시’로 불렸고 세계 전쟁사(史)에 길이 남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택시 부대의 자동차는 70% 이상이 르노사(社) 제품이었다. 이 택시 부대는 수송 작전을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요금기에 나타난 요금의 6배에 해당하는 돈은 물론, 보너스까지 받았다.
특명! 독일군으로부터 프랑스를 지켜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택시 650여 대로 독일군 몰래 무기·군사 재빨리 투입해 승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택시 650여 대로 독일군 몰래 무기·군사 재빨리 투입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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