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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서울 ㄷ초등 2년 김태후 군(가명)과 노소영 양(가명)은 서로 호감을 갖고 교제 중이다. 태후는 소영이에게 볼펜을 사주거나 휴대폰 벨소리를 선물하는 등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친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학생들 앞에서 소영이를 껴안아 눈총을 받기도 한다. 최근엔 취재차 학교를 방문한 방송국 카메라에 대고 “소영아, 사랑해!”라고 외쳐 전교생 사이에서 ‘유명인’이 됐다.
#사례 2초등 6년생 아들을 둔 김경옥 씨(38세)는 얼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깜짝 놀랐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초등학생’을 검색했는데 초등생의 키스 장면이 화면에 뜬 것. 제목은 ‘초등학생 딥키스(deep kiss)’였다. 한눈에 봐도 어린 아이들이 어른처럼 입을 맞추고 있었다. 김 씨는 “낯 뜨거운 사진을 보니 우리 애들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나더라”고 말했다.
남녀 어린이가 서로를 쑥스러워한다? 이젠 옛말이다. 요즘 초등생들은 이성(異性)에 대해 스스럼없다. 서울 ㅇ초등학교에서 안전 귀가 도우미로 활동 중인 김은자 씨(가명)는 “요즘 학생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다정하게 등·하교를 함께 하곤 한다”며 “우리 어릴 때에 비해 남녀 구분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지혜 씨(39세)는 어린이 이성 교제에 개방적인 편이다. 하지만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이 부쩍 많아진 건 걱정스럽다. “옛날엔 통신 수단이라고 해야 유선 전화가 전부였거든요. 그래서 가족이 서로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죠. 요즘은 어디 그런가요. 일단 메일이나 휴대전화 등 부모 몰래 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잖아요. 맞벌이 부부의 자녀는 딱히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고요. 솔직히 좀 걱정되긴 해요.”
◆반마다 한두 쌍은 ‘공인 커플’… 공부 단짝 등 긍정적 효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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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대부분의 초등생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문자 메시지가 새로운 이성 교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 성서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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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교제에 대한 어린이들의 속내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시내 5개 초등교를 돌며 취재했다. 대체로 반에서 한두 쌍 정도가 ‘소문난 교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 결과나 부모님의 우려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박찬형 군(서울 은로초 5년)은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 “글쎄요, 주변을 둘러봐도 여자(남자) 친구 사귀는 애들 별로 없어요. 우린 아직 어리잖아요. 이성 교제를 해봤자 어른 흉내 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교제 기간이 짧은 것도 공통점이었다. 박 군은 “사귀고 싶을 때 사귀었다가 내키지 않으면 금세 헤어지는 게 요즘 애들”이라며 “서로 진지하게 좋아해서라기보다 이성 교제를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정윤 양(서울 덕수초 4년)은 “아직은 친구들과 다 함께 어울려 놀 나이인데 사귄답시고 둘만 다니는 애들을 보면 어색하다”고 말했다.
김윤미(가명) 경북 경주 ㄱ초등 선생님은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초등생 이성 교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맛있는 걸 함께 사먹는 정도가 요즘 애들의 데이트죠. 이성 친구가 있다고 해서 학업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에요.” 김 선생님은 적절한 이성 교제는 오히려 공부나 생활 면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이성 친구와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모둠 학습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수 군(서울 효제초 5년)의 생각도 김 선생님과 비슷하다. “전 여자 친구가 있는 애들이 좋아 보여요. 공부도 같이 하고 우리만의 생각도 나눌 수 있잖아요.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씀 드리면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것 같아요.”
◆TV·자기 과시 욕구 등이 원인… 지나친 반대나 참견은 금물
이성 교제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원인 중 하나는 조숙(早熟·나이에 비해 정신이나 육체의 발달이 빠름)한 어린이의 급증이다. 올 3월 을지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조숙증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는 822명. 지난 2007년(217명)보다 3.8배가량 늘었다. 성조숙증이란 유방 발달, 고환 크기 증가, 음모 발달 등의 2차 성징이 8~9세 이전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정신’은 아직 어린데 ‘육체’는 어른 못지않게 자란 어린이들이 어른과 비슷한 형태의 이성 교제에 일찌감치 눈뜨는 것이다.
박예림 양(서울 덕수초 5년)의 어머니 김미랑 씨(40세)는 “TV와 같은 영상매체가 초등생의 이성 교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나오는 연예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수성 예민한 어린이들이 쉽사리 이성에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명은파 한국가이던스 상담센터 선임연구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입니다. 이런 경향은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강해요. 가족 안에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아이 중 일부는 이성 교제로 눈을 돌리죠. 따라서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이르거나 정도가 심한 이성 교제에 빠져 있는 아이를 바로잡으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늘 칭찬해주는 자세가 필요해요.”
자녀의 건전한 이성 교제를 위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명 연구원은 세 가지 방법을 귀띔했다. 첫째, 무조건 반대는 금물이다. 이성 교제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란 걸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지나친 간섭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사사건건 자기 일에 참견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행동은 ‘사생활 침해’처럼 비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령에 따른 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등생 때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므로 이 시기에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바람직한 이성 교제에도 도움이 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놀이'로 생각
반마다 한두 쌍 교제… 우려 수준 아닌 듯
학년 높을수록 제대로 된 성교육 이뤄져야
반마다 한두 쌍 교제… 우려 수준 아닌 듯
학년 높을수록 제대로 된 성교육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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