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신사임당의 ‘초충도병’
입력 2010.08.26 09:46
  • 이 그림 제목은 ‘수박과 들쥐’야. ‘초충도병(草蟲圖屛)’이란 병풍 가운데 한 그림이지.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야. 초충도병은 병풍 그림이라 무려 여덟 장이나 되지. ‘맨드라미와 쇠똥구리’도 그중 하나야. 평범해 보이는 그림인데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한번 들여다볼까?
     
    ● 하하 웃는 수박

    와! 먹음직스러운 수박이 두 개나 달렸네. 그런데 저걸 어떡해! 쥐들이 신나게 수박을 파먹고 있어. 그런데 좀 이상하지? 수박이 하하 웃고 있잖아. 쥐들이 파먹은 곳은 입처럼 보이고, 씨앗은 이빨 같아. 쥐들이 자기 씨를 멀리 퍼뜨려주니 좋아서 그런가 봐. 

    오른쪽에 핀 붉은 꽃은 패랭이꽃이야. 꽃을 뒤집으면 옛날 장사꾼들이 쓰던 패랭이 모양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지. 위에는 나비 두 마리가 날아다녀. 오른쪽 나비는 굉장히 화려하지?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끄는 색깔과 모양을 한 제비나비야. 왼쪽은 나방이고. 나비보다 몸이 통통하잖아.

  • 신사임당, ‘초충도병’ 가운데 ‘수박과 들쥐’, 종이에 채색, 33.2X28.5cm, 국립중앙박물관 / 신사임당, ‘초충도병’ 가운데 ‘맨드라미와 쇠똥구리’, 종이에 채색, 33.2X28.5cm, 국립중앙박물관
  • ● 유일한 여성화가

    초충도병을 그린 화가를 알아볼까? 아주 특별하고 유명한 분이지. 바로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년)이야. 신사임당은 예로부터 멋진 어머니의 대표로 꼽히는 분이야. 아들 이율곡을 위대한 학자로 키웠으니까. 하지만 신사임당은 멋진 어머니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예술가였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어머니의 역할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

    신사임당은 풀과 벌레 그림의 전문가였어. 심지어 진짜 벌레인 줄 알고 닭이 와서 신사임당의 그림을 쪼았다는 얘기까지 있단다.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봐. 앞면은 이율곡 초상, 뒷면이 바로 신사임당의 초충도야. 여기 실린 그림과는 또 다른 작품이지.

    그런데 신사임당은 왜 하필 이런 풀·벌레 그림만 그렸을까? 조선시대 여자들은 바깥출입이 어려워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기 때문일까? 아니야, 여기에는 중요한 까닭이 있어. 바로 신사임당이 어머니였기 때문이야. 자식들이 잘 자라고 남편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 때문이지. 그게 풀·벌레 그림과 무슨 상관이냐고?

    ● 가족의 행복을 빌다

    초충도병에 나오는 풀·벌레는 모두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어. 먼저 수박 그림부터 다시 볼게. 그림 속 패랭이꽃은 장수와 젊음을 뜻해. 옛 화가들은 오래 살란 의미로 이 꽃을 그렸지. 나비는 무슨 뜻일까? 나비는 알, 애벌레, 번데기를 거치는 변태를 하잖아. 새롭게 거듭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란 뜻이지. 그렇다면 수박은 뭘 뜻할까? 씨가 많으니 자식을 많이 낳으란 뜻이야. 옛날엔 자식 많은 게 행복이었잖아. 또한 쥐는 ‘쥐처럼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 되세요!’란 뜻이래. 자, 이제 수박 그림이 어떤 뜻인지 쭉 연결해봐. 그렇지. ‘자식 많이 낳고,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 돼서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야. 좋은 말만 죄다 모아놓았네. 이처럼 초충도병 8폭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 아니야.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지. 가정의 행복을 비는 간절한 기도라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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