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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찰리야. 올해 열한 살인 수컷 물개지. 아마 너희 중엔 내가 사는 마을에 와본 친구들이 많을 거야.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이미 나를 만나본 적이 있을 테고···. 나는 테마파크 에버랜드가 자랑하는 ‘물개쇼’의 주인공이거든.
나는 매일 일곱 번쯤 무대에 서. 수박만큼 큰 공을 주둥이에 올려놓고 통통 튀기면서 몇십미터(m)를 걷기도 하고, 앞발로 박수를 치기도 해. 여러 개의 그림 중 똑같은 것들을 단박에 맞힐 줄도 알고, 4m 높이에서 멋지게 다이빙도 하지. 내가 물개 친구들과 동작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너희는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무진장 큰 박수를 보내주곤 하지. 그런데 말이야, 난 공연을 할 때마다 너희 눈에서 이런 궁금증을 읽는단다.
‘도대체 어떻게 물개들이 저런 공연을 할 수 있는 걸까?’
자, 지금부터 내 얘기에 귀 기울여보렴. 오늘은 내가 그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줄게.우리 공연팀은 모두 여섯 마리야. 톰과 대쉬는 나와 동갑, 제임스는 아홉 살, 그리고 캐빈과 폴이 여섯 살 동갑으로 막내야.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이곳으로 왔어. 눈치 빠른 친구라면 벌써 알아챘겠지만 우린 모두 수컷이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엔 암컷이 꽤 있었어. 그런데 우리가 자꾸 말썽을 일으켰단다. 번식기가 되면 암컷들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을 심하게 했거든. 덕분에 공연은 종종 엉망이 됐고, 결국 우리만 남게 됐지. 가끔 그녀들이 그립긴 하지만 뭐, 누굴 탓하겠어···.
공연팀에 처음 오게 되면 애니멀트레이너(조련사)와 만나게 돼. 처음엔 서로 엄청 서먹서먹하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쉽게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거야.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우리 몸 깊은 곳엔 야생동물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 그래서 우린 그들을 믿을 수 없고, 항상 경계하게 돼. 그런데 말이야, 그들은 이런 우리 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더라고. 인내심도 대단해. 온종일 우리 곁에서 지내면서 오랫동안 눈을 바라봐주고, 맛있는 먹이도 주고, 조금만 잘해도 진심 어린 말로 칭찬해주거든. 진심이 담긴 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음···. ‘아기들도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은 알아본다’는 말, 들어본 적 있니? 마찬가지야. 물개의 지능은 보통 2~3세 아기 수준이라고들 해.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아챌 수준은 된다는 뜻이야.
그렇게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 6개월 정도,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신뢰가 쌓이게 돼. 그때가 되면 조련사가 몸에 손을 대도 더 이상 물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게 되는 거지. 이런 과정을 조련사들은 ‘순치(馴致·짐승을 길들임) 과정’이라고 부르더라.
자, 이제 우린 서로 믿고 신뢰하는 사이가 됐어. 그러면 이제 천천히 공연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지.
훈련의 가장 기본은 ‘입터치’, 즉 조련사와의 뽀뽀야. 조련사가 몸을 만지는 걸 허락하긴 했지만 우린 여전히 야생동물이잖아. 갑자기 조련사가 입을 들이대면 처음엔 당황할 수밖에 없어.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아까도 말했잖아, 조련사들은 인내심이 정말 대단하다니까. 그들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어. 처음엔 내 입과 조련사 입 사이에 손바닥을 완전히 끼워놓고 뽀뽀를 하더라. 자꾸 보니까 나도 따라하게 되잖아. 아기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수십·수백 번 반복해 서로 손바닥을 사이에 두고 뽀뽀를 하게 됐는데, 어느 날 보니까 우린 서로 입터치를 하고 있었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사이의 손바닥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던 거지···.
모든 훈련은 이런 식으로 진행돼. ‘조금씩 조금씩’ ‘세분화’해서 ‘반복적’으로 말이야. 몇 가지만 더 예를 들어볼까? 우리가 무대에서 조련사를 졸졸 따라다니는 동작(‘따라다니기’)도 사실 오랜 훈련의 결과야. 처음엔 조련사들이 우리 바로 앞에 서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해.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맛난 먹이통을 두고 말이야. 물론 우리가 잘 따라가면 칭찬으로 먹이를 주곤 하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리가 넓혀지고, 결국 우리는 수십미터도 졸졸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는 거란다. 4m 높이에서의 다이빙도 마찬가지야. 처음부터 높은 곳에 올려놓으면 우리도 인간과 똑같아. 겁에 질려 벌벌 떨기도 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해. 그래서 조련사들은 몇센티미터(cm), 또 몇센티미터 하는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높이를 높여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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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지난달 29일 에버랜드 물개쇼 공연장을 찾 은 어린이들이 물개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즐 거워하고 있다. ②③물개쇼 공연엔 다른 동물들이 조연으로 함께 출연한다. 수달과 백조 역시 특별한 훈련 을 거친‘배우’들이다. ④몸을 곧게 세운 채 높이 뛰어올라 공중의 볼을 터치하는 다이내믹 한 동작은 제임스 가 전문이다. ⑤에버랜드 물개 공연팀 중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는 찰리가 이진영 애니멀트레이너와 함께 우아한 볼 컨트롤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용인=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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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훈련을 마치고 기초가 탄탄해지면 중급 단계로 들어가. 박수 치기, 경례하기, 꼬리 들기 등은 공연에서 사용하는 동작들이긴 해. 하지만 사실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야. 그렇다고 쉬운 훈련은 하나도 없어. 조련사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해. “동물을 훈련시키는 건 꼭 리포트를 쓰는 느낌”이라고 말이야. 그 기분은 너희도 아마 알 거야. 수학 숙제를 하나 마쳤는데, 전혀 다른 사회 숙제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을 때의 기분 말이야.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드디어 고급 단계로 들어가. 3층 높이에서 다이빙하기, 공중에서 두 바퀴 돌기, 줄넘기, 원반 받기 등의 동작이지. 이 과정을 순탄하게 마치게 되면 드디어 화려한 무대에 서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음···. 물개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충 꼬박 2년이 걸린다고 보면 돼.
그런데 모든 물개가 다 똑같은 동작을 할 수 있느냐고? 에이, 설마! 너희도 모두 성격이 다르고, 잘하는 게 다르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어떤 친구는 체격이 크고 성격이 급한 반면, 또 어떤 친구는 참을성이 많기도 하단 말이야. 그리고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조련사들은 그걸 정확히 파악하고는 제일 잘할 수 있는 동작들을 가르쳐주지. 이를테면 지능과 유연성이 뛰어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나 같은 물개는 그림 맞히기나 볼컨트롤 같은 동작을 주로 맡아. 반면에 성격이 급하고 체격이 큰 제임스 같은 녀석은 다이빙이나 회전 같은 다이내믹한 동작 전문이지. 참을성이 많은 친구들은 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역할을 맡아.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뭐가 어렵냐고? 에이···. 또 잊었구나? 우린 야생동물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조련사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체중도 재고, 가볍게 훈련을 하면 금세 낮 12시. 첫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야. 공연은 20분 정도 걸리지. 무대 뒤로 돌아가서 쉬고 다시 공연. 물론 화려한 조명과 우레와 같은 박수, 그리고 즐거워하는 너희 표정을 보면 나도 즐거워. 하지만 가끔은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야. 조련사에게 불만이 쌓여서 심술을 부리고 싶을 때도 있고. 칭찬도 잘 안 해주고, 놀아주는 시간도 줄어든다면 불만이 쌓이는 게 당연하잖아.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고? 공연에 나가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안 하는 거지 뭐. 볼이나 원반을 던져줘도 ‘나 몰라라’ 하고, 물에 풍덩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도 하고···. 치사하다고? 뭐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은 없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의사 표현을 해야 하지 않겠어? 한 가지만 더 비밀을 알려주자면 우린 새로 조련사가 오면 골탕을 먹이기도 해. 일부러 지시를 거부하기도 하고, 가끔은 몸으로 위협하기도 하지. 일종의 텃세를 부리는 거지, 뭐.
그러니까 친구들아, 부탁 한 가지만 할게. 동물 공연을 보러 갔는데 실수가 자꾸 나와도 ‘저 녀석 바보 아냐?’라며 무턱대고 야유를 보내진 말아줘.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아, 저 녀석이 오늘은 불만이 많구나’ 또는 ‘몸이 힘든가 보구나’ 하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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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급 단계의‘꼬리 들기 동작’. 이처럼 정적인 동작은 주로 참을성이 많은 물개들이 맡는다. 야생동물에 겐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용인=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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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개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어린이대공원 : 동물공연장에서 평일 5회, 주말 6회 공연(문의 02-450-9311)
▨서울동물원 : 돌고래쇼장에서 평일 3회, 주말 4회 공연(문의 02-500-7114)
▨63씨월드 : 매일 3회 공연(문의 02-789-5663)
▨에버랜드 : 물개공연장에서 6~7회 공연(문의 031-320-5000)
"조련사가 칭찬해주면 다이빙은 식은죽 먹기야"
"무대에 서려면 2년간 온갖 훈련 거쳐야 돼"
"무대에 서려면 2년간 온갖 훈련 거쳐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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