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안견의 ‘몽유도원도’
입력 2010.07.23 09:48
아! 어젯밤 노닐던 그 복사꽃 마을이구나···
  • 오늘은 옛 그림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작 ‘몽유도원도’를 감상하자. 세상 모든 사람이 꿈꾸는 천국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야. ‘몽유도원도’란 ‘꿈속에서 노닐던 복숭아꽃 동산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 자, 왜 이렇게 유명한 그림인지 함께 살펴볼까?

    ● 안평대군의 꿈

    어느 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년)이 꿈을 꾸었어. 꿈속에서 안평대군은 집현전 학자 박팽년과 산속에서 길을 잃었지. 한참을 헤매다가 어떤 시골 노인이 나타나 안내를 해 주었어. 말을 타고 가던 길은 숲이 울창하고 깎아지른 절벽이었는데, 거길 지나자 아주 넓은 곳이 나타났어. 사방에는 산들이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가 오락가락하는 복숭아나무 숲, 바로 ‘무릉도원’이었지.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어. 안평대군은 그 꿈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나 봐. 친하던 화가에게 꿈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지. 화가는 붓을 든 지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했어. 안평대군의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그림이었단다.

  • (위) 안견, ‘몽유도원도’, 비단에 수묵담채, 38.6X106.2cm, 일본 덴리대학교 / (아래) 안평대군, ‘몽유도원도 제첨’
  • ● 꿈속에서 노닐던 복사꽃 동산

    이 그림은 옆으로 삼등분해서 보면 좋아.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가운데로. 안평대군은 왼쪽에서 출발했지. 나무도 보이고 높고 낮은 산도 있어. 산수화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야. 가운데로 접어들면 길이 나타나. 길은 낭떠러지를 따라 꼬불꼬불 복잡하게 이어졌어. 중간에 동굴도 지나고, 양옆으로는 금방이라도 굴러 내릴 것 같은 흔들바위와 괴물을 닮은 바위도 있어. 이처럼 험한 까닭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야. 조심해. 떨어지면 큰일 나니까.

    길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오른쪽과 연결되었어. 길이 끝나는 곳에 이단으로 된 폭포가 있지? 여기서부터 무릉도원이 시작돼. 옆을 보렴. 깊은 산 속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넓은 곳이 있지. 사방은 높은 산으로 막혀 있어. 바로 무릉도원이야.

    와! 저것 좀 봐. 수십 그루의 복숭아나무로 꽉 찼어. 붉은 꽃까지 활짝 폈잖아. 게다가 신비스런 구름까지 나무를 둘러쌌어. 과연 천국이라 불릴 만큼 황홀하잖니? 안평대군이 반할 만도 하지.

    ● 조선의 4대 화가, 안견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가 누구냐고? 그 당시 안평대군의 꿈을 제대로 그려 낼 화가는 딱 한 명밖에 없었어. 바로 안견(?~?)이야. 정선·김홍도·장승업과 더불어 조선의 4대 화가로 불리던 안견! 그가 아니었으면 이런 작품을 구경할 수 없었을 거야.

    이 그림이 유명한 까닭은 또 있어. 안견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느낌을 적어 놓았거든. 옆에 있는 멋진 제목 글씨(제첨)는 안평대군이 썼어. 안평대군은 당시 최고의 명필로 유명했거든.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멋을 부린 글씨야.

    왼편으로는 푸른 바탕에 붉은 글씨로 잇달아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적었지. 이뿐 아니라, 당시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던 21명의 선비들도 소감을 적었어. 소감들을 쭉 이어 붙이니 길이가 무려 20야. 그림이 약 1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 명작 ‘몽유도원도’는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솜씨가 어우러져서 탄생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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