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학은 지금]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
입력 2010.05.18 13:55
  •  “와!!” 새벽 7시, 미국 대학의 합격 결과를 컴퓨터로 확인한 순간 나는 고등학교 기숙사 룸메이트를 껴안고 날뛰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둥둥 떠있었다. 저녁 자습시간이 되자, 나는 이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내가 붙은 대학의 학생생활을 그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와튼스쿨>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메신저 프로그램을 키고 한 선배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선배, 제가 책을 읽었는데 여기 학교 생활이 엄청 힘든가 봐요. 어떡하죠? 안 그래도 첫 유학인데...”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학교에 붙은 날, 하루쯤은 실컷 즐겨도 될 법한 이 날에 나는 대학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재미있는 기억이다.

    흔히 유펜으로 알려져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은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이다. 와튼스쿨은 유펜의 비즈니스스쿨이다. 경영학부가 많은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서는 주로 대학원 MBA과정을 통해 비즈니스를 공부할 수 있는데, 와튼스쿨은 다른 대학들과 달리 학부에서부터 바로 비즈니스를 공부할 수 있어서 경제, 경영에 관심이 많던 내가 꼭 가고 싶은 학교였다.

    와튼스쿨하면 사람들은 으레 치열한 학교라는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학교의 커리큘럼, 그리고 높은 연봉의 취직을 위해 학점에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학생들에게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골드만삭스 같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컨설팅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첫 학기의 Management 100라는 경영 수업을 들을 때 일이다. 10명이 한 팀이 되어 한 학기 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이 수업의 골자인데, 우리 팀은 노숙자들을 위한 큰 자선콘서트를 여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가수 초청부터 티켓 발행, 공연장 확보까지 일일이 직접 작업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멤버들끼리 서로를 평가 하고, 이것이 점수로 직결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항상 시험이나 선생님의 평가를 통해 점수를 받아왔던 내게 이런 방식은 무척 낯설었고,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팀 멤버들에게 잘 보이고자 회의가 열릴 때마다 열심히 참여하고자 했지만, 한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연결되는 빠른 토의문화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내가 말할 순서를 기다리다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점수가 잘 나올 리가 만무했다.

    학기가 중반을 넘어설 때쯤 서로 중간 평가를 하는 날이 왔다. “창현, 너가 리드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 “창현, 너의 아이디어는 항상 참신하지만 좀더 자주 말해줄 수 있겠니?” 여러 가지 날카로운 지적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했던 것이 사실이다.

    팀에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자원해서 일을 맡던 중국계 여학생이 있었는데, 멤버들이 “너가 너무 욕심을 내서 일을 맡는 바람에 남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잖니” 라고 따끔한 지적을 하자 그만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아 조교가 달려와서 달랬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온라인으로 최종점수 평가를 하는 날 밤, 가장 친하던 백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창현아, 내 생각엔 누구랑 누구는 서로 점수를 잘 주기로 한 것 같더라. 우리도 말 좀 맞춰서 점수 잘 주는 게 어때? 난 우리가 실제로 잘했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어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고는 어떻게 할까 한참 고민을 했다. 결국 나는 원래 주려던 점수대로 주기로 했다. 미국 학생들은 역시 서로 눈치를 많이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와튼스쿨은 지난 1년간 내게 점수만 좇아가도록 가르쳤을까? 그렇진 않다. 비즈니스 스쿨인 만큼 무엇보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 취직하여 바로 마주할 비즈니스 세계의 치열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훈련시켜온 것이다.

    팀 활동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리더십들이 존재한다는 것, 다양한 성격의 멤버로 구성된 팀이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 등은 이러한 경험들이 없었다면 절대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학기가 시작한다면 이번엔 지난 경험을 살려 더 멋지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싶다. 이제는 미숙한 1학년이 아닌, 당당한 2학년 베테랑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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