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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서울시교육청 공무원(8급)으로 일하던 20대 여성은 미련없이 일터에 사표를 냈다.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서였다. 운명처럼 시작된 17년간의 ‘도전 인생’. 겁없는 청춘은 가셔브룸Ⅱ(8035m)를 시작(1997년)으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高峰) 14곳을 13년 만에 모두 등정하며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철녀’로 기록됐다. 무려 11만5945m에 달하는 히말라야 14좌를 오르며, 꽃다운 청춘의 얼굴은 까맣게 변해갔고, 머리엔 어느새 흰머리도 늘었다.
오은선(44세·사진). 그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여성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7일 오후 안나푸르나(8091m)를 정복하면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 도봉산에 갔다가 산의 매력에 사로잡힌 오 대장은 대학 산악부에선 ‘날다람쥐’란 별명이 붙었던 타고난 산악인이었다. 키 154cm, 체중 48kg의 왜소한 체격에도 정상급 남자 철인 3종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의 심폐 기능과 타고난 피로회복 속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등정 인생’은 실패로 시작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덤벼든 첫 에베레스트(8848m)에서 정상까지 1500m를 남겨놓은 지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시아 여성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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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오 대장의 14좌 도전은 무섭게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2006년 시샤팡마(8027m) 정복을 통해 세번째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더니, 지난해 8월까지 3년간 무려 11개 봉우리를 자신의 발아래 두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 오 대장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번에 세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길고 거칠었던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은선 대장의 도전이 주목받는 건 타고난 신체 조건만큼이나 약점을 이겨낸 강한 정신력 때문이다. 그의 무릎은 좌우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다리의 힘이 왼쪽에 비해 20%가량 약하다. 청각 능력도 보통 사람보다 둔해 8000m가 넘는 고산을 오르기에 힘든 점이 많다.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평소 마음은 여려 지난해 7월 후배 산악인 고미영 씨가 히말라야에서 사망했을 땐, 오랜 시간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기록을 위해 산에 다닌 게 아니라, 등산이 좋아서 시작했고 꿈을 꾸게 되었다”는 오은선 대장. 14좌 완등 성공 후 그녀가 꾸는 꿈은 소박했다. “이제는 행복하게 산을 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여유 있게 생각해 보고 싶어요.”
여성 최초 '14좌 완등' 오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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