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선생님은 이 사람이 거지인 줄 알았어. 다 찢어진 반바지에 누더기 옷을 걸쳤잖아. 게다가 맨발에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졌어. 허리춤에 동냥 바가지 하나 차면 딱 맞겠는데. 손에 든 건 또 뭘까. 동냥 음식 찍어 먹는 포크라고? 설마! 그 아래 있는 작은 동물은 또 뭐지? 개구리 같기도 한데….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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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정, ‘하마선인도’, 비단에 담채, 22.9X15.7, 간송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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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신선
이 그림은 어쩐지 좀 거칠지 않니? 잘 다듬지 않은 느낌이 들어. 옷 좀 봐. 마치 장난치듯 아무렇게나 먹칠해 놓았잖아.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는데. 안 그래?
그 거친 느낌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야. 주인공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니까. 화가 많이 난 것 같지? 아니, 주인공보다는 화가가 더 화난 것 같아. 아무 말이나 막 내뱉듯, 붓 가는 대로 막 칠했어.
혹시 분을 삭이려고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닐까? 억지로 참기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는 편이 스트레스 풀기에도 좋잖아. 이제 이 사람 정체를 밝혀야지. 정말 거지는 아닐 테니.
이 그림은 ‘하마선인도(蝦磨仙人圖)’야. ‘웬 하마냐고? 두꺼비를 한자로 ‘하마(蝦磨)’라고 해. 그럼 발이 셋 달린 동물은 두꺼비겠네. 그럼 ‘선인(仙人)’은 무슨 뜻일까? 바로 ‘신선’이라는 뜻이야. 그렇다면 이 작품 제목은 ‘두꺼비 신선’이 되는 거지.
그림 속 남자의 이름은 ‘유해’야. 유해는 10세기경 중국에 살았던 신선인데, 이 두꺼비 덕분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대. 두꺼비는 유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데려다 주었거든. 그런데 녀석이 가끔 말썽을 피웠나 봐. 자꾸만 옛날에 살던 우물가로 도망치곤 했다니까. 그때마다 유해는 다섯 개의 갈고리(또는 엽전)가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건져 올렸어. 그림에서 손에 든 게 바로 그거야.
유해는 당연히 화가 났겠지. 두꺼비한테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니까. 지금 막 큰 소리로 꾸짖고 있어. “너 자꾸 이럴래? 다음에 또 이러면 재미없다!”
두꺼비 모습 좀 봐. 재미있지? 한 발로 땅을 짚고서 두 발로 무어라 변명하는 것 같잖아.
유해가 나오는 또 다른 그림이 있어. 이정(1578~1607년)의 ‘두꺼비를 탄 신선’이야. 아까 이 두꺼비는 어디든 데려다 준다고 했지? 지금 유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야. 입에서 무얼 막 내뿜고 있어. 그런데 재미나게도 유해와 두꺼비의 얼굴이 서로 비슷해.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닮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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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 ‘두꺼비를 탄 신선’, 종이에 수묵, 30.3X23.9,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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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 그림은 심사정(1707~1769년)의 작품이야. 그림 위쪽에 ‘玄齋(현재)’라고 심사정의 호가 쓰여 있지. 심사정은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의 삶은 비극이었어.
심사정은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증조할아버지가 영의정이었고, 친척 중에 임금의 사위까지 있었거든. 문제는 할아버지 심익창이었어. 과거 시험을 감독할 때 답안지에 이름을 바꿔치기하다 들통났거든. 요즘도 시험 때 부정행위는 엄하게 처벌하잖아. 정직과 양심이 최고였던 조선시대에는 더욱 용서될 수 없었지. 심익창은 이 일 때문에 관직을 빼앗기고 10년이나 귀양을 살았어.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다음엔 더 큰 일을 벌였지. 나중에 왕위에 오를 영조 임금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지 뭐야. 임금에게 반역을 꾀하는 건 가장 큰 죄야. 당연히 심익창은 죽었고 집안도 완전히 무너졌지.
이때 심사정의 나이 18세. 이 일로 심사정은 벼슬할 뜻을 영원히 접어 버렸지.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삶의 보람을 찾기 시작했어. 죽은 다음에 세워진 묘비에 이렇게 쓰여 있을 정도였지. ‘평생을 근심과 걱정으로 쓸쓸하게 지내면서 단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누더기 입었다고 무시 마! 이래 봬도 신선이야!"
선의 거친 느낌이 화난 주인공과 닮았네
선의 거친 느낌이 화난 주인공과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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