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로 본 논술] 막장 졸업식, 비행의 문화일까 저항의 문화일까
입력 2010.03.04 03:34
중·고교 졸업식 뒤풀이와 청소년 문화
  • ◆중·고교생의 막장 졸업식 뒤풀이 사건

    중학교 졸업식 이후 남녀 학생들이 옷을 갈기갈기 찢고 전라의 모습으로 뒤풀이 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유포돼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는 경찰이 해결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막장 졸업식 뒤풀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 중병으로서 졸업생과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5가지 관점이 소개돼 있다. 각각의 입장에서 이번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자.


    ◆ 미성숙한 문화로 보는 관점

    청소년 문화 자체를 거의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입장이다.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문화를 모방한 미성숙한 부분 문화만이 존재한다고 본다. 영상 매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세대는 청소년들이다. 최근 들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발언, 연예인들의 막말, 게임에서 가학적으로 학대하는 벌칙 등이 흔하게 방영된다. 청소년들은 이런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해 졸업식 뒤풀이를 충동적인 사건으로 만들었다. 이런 입장에서는 저질 방송 프로그램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상규제의 정도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한 중학교의 졸업식. /연합

  • ◆비행의 문화로 보는 관점

    청소년 문화를 극도로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다. 청소년 문화는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투성이의 문화, 또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일탈과 비행의 부정적인 문화로 인식한다. 문제가 된 졸업식 뒤풀이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불량 서클의 회원으로서 죄의식과 수치심을 모르는 아이들이다. 다른 차원에서는 또래 집단이 가진 군중심리의 표출로 함께 동참하지 않으면 왕따 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런 행위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사회적 부적응의 모습인 일탈의 현상이 아니라 또래 집단에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육체적 발달에 맞는 정신적 차원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사회와 학교는 철저한 인성교육과 충동적인 비행을 감독하고 계도하기 위한 규칙을 마련한다.



    ◆저항의 문화로 보는 관점

    기성의 문화를 주류 문화로 보고, 비주류 문화인 청소년 문화를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저항과 돌풍의 문화로 본다. 기존의 질서와 기성세대의 문화적 틀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무시한다. 청소년들은 사회의 안정과 통합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가치를 비웃으면서 사회 불안과 해체를 이끄는 문화를 즐기는 속성이 있다. 입시경쟁 속에서 학교를 감옥으로, 자신들을 죄수로 인식하며 졸업식 뒤풀이를 입시 해방감을 표출하는 자리로 마련한다.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자유를 찾아 탈옥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가 독방의 벌칙을 감수하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가운데 '저녁 바람은 부드럽게'를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경쟁에서 지친 학생들의 어깨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두발 규제의 명목으로 가위로 머리를 자르거나 소지품 검사를 하는 등,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적 행위들을 삼가야 한다.



    ◆하위문화로 보는 관점

    청소년 문화를 독립적이고 주류적인 문화, 즉 기성 문화와 대등한 또 하나의 문화로서가 아니라 기성 문화의 아류 문화로 보는 시각이다. 여성 문화, 노인 문화, 농민 문화 등 보통의 사회 집단이 모두 하위문화를 가지고 있듯이 청소년 문화가 존재한다고 본다. 농업 사회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쉽게 습득했다. 그러나, 산업 사회 이후에는 고도의 훈련과 학습이 요구되고, 청소년 시기가 길어지면서 청소년 문제가 사회 문제의 중심으로 부각됐다. 특히 정보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의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려고 감각적이고 자극적으로 자신들을 포장하려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이 소중하다는 자존감 및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도 소중하다는 배려심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 강방식 동북고 교사
  • ◆대안 문화로 보는 관점

    청소년 문화를 전혀 새롭고 독립적인 영역을 지니는 또 하나의 문화, 즉 기성의 성인문화와 대등한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새로운 문화로 본다. 청소년 문화를 기성의 문화 감각이나 기존의 성인문화의 틀에 비추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대안적 문화로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입장이다.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모범생들에게 표창하는 데에만 졸업식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졸업식 문화를 바꿔 자신들만의 재미와 흥미를 가진 졸업식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졸업식, 졸업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행사로 탈바꿈돼야 한다. 〈호모 루덴스〉를 집필한 호이징가가 이야기하는 '놀이'의 가치를 최대한 살리는 대안의 졸업식을 만들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가진 지배와 복종의 폭력 관계를 비판하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지만 잘못하면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 심한 폭력을 즐기는 양상으로 표출되는 한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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