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자기를 빚는 손의 살갗이 조금 달랐다. 햇빛에 그을렸을까. 궁금한 마음에 거뭇거뭇한 그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흙과 함께 살아요.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피부가 갈라지고 트기 일쑤죠. 여기 이 상처 보이세요? 흙 독이 올라서 생긴 거예요."
3학년 김윤아(18)양은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표정으로 잠시 멈췄던 물레를 다시 힘차게 찼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육중한 흙덩어리가 김양의 손끝에서 항아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6월 9일 기자는 경기 이천에 있는 한국도예고를 찾았다. 기숙사와 학교 건물 중간에 자리한 전통 가마가 '여기는 도예인을 기르는 곳'이라고 안내하는 듯했다. 산업 도자 수업(도자기 대량 생산 실습수업)이 진행되는 실습실 앞 복도에는 손잡이 달린 컵, 꽃병 등이 진열돼 있었다.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이 만든 솜씨치곤 제법이었다. 실습실로 들어서자 10명이 채 되지 않는 2학년 학생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석고 틀에서 컵을 빼내고 있었다. 허리에 두른 앞치마 위로 흙탕물이 튀어 옷이 지저분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점구 교사는 "지난 시간에 만든 석고 틀에 흙물을 부어 컵을 찍어내는 과정"이라며 "같은 모양이지만 다양한 문양과 색깔을 입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한국도예고는 한국 전통 도자기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도예인 육성을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특성화 고교다. 도예전문 고교로는 국내에서 유일무이하다. 한영순 교장은 "우리나라 도자 문화는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100년을 앞서 형성됐지만, 임진왜란으로 많은 부분이 손실됐다"며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살려내야 한다는 뜻이 모여 한국도예고가 설립됐다"고 말했다.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것을 강제로 약탈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도자 문화를 형성하고 있더군요. 앞으로 전통 도자 문화를 어떻게 살려내야 할지 청사진이 보였습니다. 한국도예고는 한국의 우수한 도자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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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손으로 전통 도자 문화를 되살릴 거예요”학생들의 도자기 사랑은 깊었다. 한국도예고학생들이 직접 빚은 도자기를 들고 가마 앞에 서 있는 모습./이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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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년당 60명씩 총 180명의 학생이 도예고에 재학 중이다. 이들 중 약 60%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탓이다. 헬스장, 노래 연습실 등이 갖춰진 기숙사에서 작업과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제주도에서 온 1학년 박도연양은 "진로 선택으로 고민하던 차에 학교를 접했고, 도자기의 매력에 빠져 도예고로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업은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전공 실습을 중심으로 실시한다. 1학년 때는 공통교과와 실습 과목 두세 개를 이수하고 2·3학년에는 전문교과의 비중이 커진다. 물레성형 실습, 산업도자 실습, 도자조형 실습, 디자인 실습 등 현장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이 교사로 나선다. 또 도예 명장과 도자기 산업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듣기도 한다. 실습 장비도 여느 공방, 산업 현장 못지않다. 임정빈 교사는 "대학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기계와 실습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내뿐 아니라, 교외 활동도 활발하다. 도예경진대회와 세계도자비엔날레, 이천도자기축제 등에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평가받는다. 방과 후에는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해 대학 진학과 기능 연마에 도움을 주고 있다.
재학생의 20%가량은 부모의 가업을 잇기 위해 도예고를 택한 경우다. 3학년 김윤아양은 "경북 문경에서 도예가로 활동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진로를 결정했다"며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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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아양이 물레를 차고 있다./이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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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몸이 고단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도자기를 잘 빚을 수 있을까'예요. 갈라지고 튼 손등에 약을 바르면서도 도자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한국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죠."
보통 졸업 후에는 대학의 도예학과, 전통미술공예과, 도자공예과 등으로 진학한다. 도자기 관련 회사로 취직하거나 도예가, 공예가, 교사, 공예 디자이너로 활약한다.
도예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명확하게 그리고 있었다. 각기 목표는 달랐지만, 도자기에 대한 열정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도예과 교수가 꿈이라는 2학년 이시은양은 "해마다 두 번씩 열리는 전통가마 불지피기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장장 3일에 걸쳐 불을 지키고 세기를 조절하면서 도자기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이 필요한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영순 교장은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한국의 도자 문화는 충분히 되살릴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며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기능과 창의력을 겸비한 도예인을 배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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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도자기가 가마안에 진열돼 있다./이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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