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신윤복의 '단옷날 풍경'
입력 2009.12.03 21:41
어머~ 근엄한 조선시대에 목욕하는 여인이 주인공···
쑥스러워라! 대체 무슨 날이기에?
  • 저긴 뭐 하는 곳일까? 얼핏 보니 여자들뿐이네. 설마 찜질방은 아닐 테지. 가만있자, 어디부터 살피나. 어! 저게 뭐야. 여자들이 모두 옷을 홀딱 벗었잖아. 아유, 쑥스러워. 대체 여기가 어디야. 저렇게 해도 되나? 부끄럽지만 다 같이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 신윤복, ‘단옷날 풍경’,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 신윤복, ‘연못가의 놀이’,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가 눈에 확 들어오네!

    어디서부터 볼까. 그래, 그네 타는 여인이 좋겠어.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가 눈에 확 들어오잖아. 아주 화려한 모습이야. 뒤에서는 여자들이 머리를 다듬고 있어. 한 사람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고, 한 사람은 손은 올려 머리 매무새를 고치고 있어. 밑에는 보따리를 인 여인도 보여. 왼쪽 아래에서는 여자들이 몸을 씻고 있네. 그래, 여긴 계곡이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지.

    저건 또 뭐지? 바위 사이에 남자 둘이 숨었어. 저런! 옷 벗은 여자들을 훔쳐보고 있잖아. 까까머리인 걸 보니 절에 사는 스님들인데. 나 참, 스님들이 저런 짓을. 아무래도 무슨 특별한 날 같지?

    ▶그네뛰기와 머리 감기, 단옷날 풍경 그네뛰기, 머리 감기···.

    뭐 생각나는 거 없니? 그래, 단옷날에 하는 일이잖아.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 되는 날이야. 홀수인 숫자 ‘5’가 두 번 겹치는 날이라, 예로부터 양기가 넘치는 아주 좋은 날로 여겼지. 여자들은 이날 그네도 뛰고 쑥떡을 해 먹기도 했어. 특히 창포를 달인 물에 꼭 머리를 감았어. 그러면 머릿결도 좋아지고 나쁜 일도 막아 준다고 믿었거든. 그래서 저렇게 계곡을 찾은 거야.

    ▶목욕하는 여인들이 진짜 주인공

    먼저 그네 뛰는 여인부터 살펴볼게. 화려한 옷차림으로 봐서는 기생일 가능성이 높아.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는 여인들은 기생밖에 없거든. 여기 있는 여인들은 모두 기생일 거야.

    그네 뛰는 여인 뒤에서는 다른 여인 둘이 머리를 다듬고 있어. 땅바닥까지 늘어뜨린 머리가 굉장히 길지? ‘트레머리’라는 일종의 가발인데, 머리에 얹으면 그네 타는 여인처럼 돼.

    왼쪽 구석에는 목욕하는 여인들과 이 모습을 훔쳐보는 어린 스님들이 있어. 보기에도 좀 쑥스럽지? 화가도 그랬나 봐. 일부러 개울가의 나무를 짙게 칠해서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어.

    이 모습을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어. 들키든 말든 좋아서 킬킬대는 모습이 철없기도, 순진하기도 해. 스님들이 있는 곳 바로 위에도 나뭇잎을 짙게 칠했어. 목욕하는 곳과 훔쳐보는 곳, 둘 다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은근히 강조했지.

    사실 이 그림의 중심은 그네뛰기가 아니야. 여인들이 목욕하는 곳의 비밀스러움을 감추려고, 그네 뛰는 여인에게 일부러 화려한 옷을 입혀 눈길을 돌렸지. 그림의 중심은 바로 목욕하는 여인들이야. 점잖았던 조선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파격적인 그림이지. 대체 누가 그렸을까? '단옷날 풍경'은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시대 가장 널리 알려진 풍속 화가인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야.


    ▶화가 신윤복은

    혜원 신윤복(1758~?)은 원래 도화서 화원이었는데 쫓겨났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남녀가 어울려 있는 그림만 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양반들을 비꼬기 위해서다. 근엄한 조선 시대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매우 값진 일이다. 신윤복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는 시대를 앞서 외롭게 살다 간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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