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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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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이 과제를 작성하고, 그림을 그리며, 지식 전달까지 대신하는 시대다. 챗GPT, 미드저니, 믹스 오디오 등 기술의 발전은 대학 강의실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며 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제 교육은 ‘무엇을 얼마나 잘 가르칠 것인가’보다 ‘왜 배우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인 전환점에 이르렀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은 이러한 흐름을 두고 “문명 자체가 바뀌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더 이상 교육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려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부터 ‘탈산업화 시대의 대학 교육’을 고민해온 염 총장은, 현재 태재대에서 AI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 구축에 힘쓰고 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교육은 더욱 인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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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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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닌 일상이 됐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이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요즘 ‘AI시대’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합니다. 저는 이걸 단지 기술이 조금 더 편리해졌다는 정도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문명 자체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느껴요. AI는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걸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눈, 사회를 이루는 방식까지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45년쯤 ‘AI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고 했고,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2050년쯤이면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했죠. 저는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고, 우리가 체감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단순히 직업 몇 개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에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간답다는 건 무엇일까?’, ‘교육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같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AI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할까’를 교육이 묻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AI시대를 맞이하며 교육자로서 가장 깊이 고민하신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한 질문은 ‘AI시대에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였어요. 기술이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체하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일하는 존재’(호모 파베르, Homo Faber)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제 ‘놀이하고, 창조하는 존재’,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는 단지 기술에 적응하자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방식 전반이 전환기를 맞았다는 의미죠.
약 15년 전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주 3일 근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제 그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죠.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근무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누가 더 오래 일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강조합니다. ‘시간을 관리하지 말고, 일을 관리하라’, ‘눈에 보이는 활동보다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자’고요. 태재대학교 역시 이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출퇴근을 강제하지 않고, 협업 도구를 활용해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설계하고 기록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일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냈고, 무슨 가치를 창출했느냐입니다. 이제는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과감히 도전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요구됩니다.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오늘날 교육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믿어요.”
─ AI시대에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생존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많은 사람이 ‘AI에게 밀릴까 봐 두렵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AI에게 밀리는 게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 밀리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중요한 건 기술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내 일상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느냐입니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익숙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생존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신대륙이 막 열렸을 때와 비슷합니다. 오픈AI나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이미 AI라는 고속도로를 깔아놨고, 우리는 이제 그 위에서 어떤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굳이 도로를 다시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 위에서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죠.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자동차 옆에 사람이 깃발을 들고 따라다녀야 한다는 규제를 제안한 사례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면허만 있다면 자유롭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왜 가능했을까요? 브레이크와 신호, 도로라는 인프라가 함께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AI가 무섭다’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AI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죠. 바로 그 역량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생산성과 역량을 열 배, 백 배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생존자이자, 미래를 이끄는 리더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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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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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교육은 어떤 본질적인 역할을 해야 할까요?
“교육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일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전인적 과정이죠. 그동안의 교육은 산업화 시대에 맞춰 지식을 세분화하고 조립하듯 가르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학생들도 정해진 전공 하나를 깊이 파고들어 평생 그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번 배운 것으로는 평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두세 번쯤 새롭게 설계하고, 그때마다 다시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게다가 오늘날은 스마트폰만 켜도 웬만한 정보는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보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지가 핵심 역량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AI시대 교육의 중심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교육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감, 협력, 책임감과 같은 정서적·사회적 역량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힘이죠. 앞으로의 교육은 바로 이 인간다움을 길러주는 데 가장 집중해야 합니다.”
─ 그런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길러야 할 인재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깊이 있게 사고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죠. 이제는 선생님에게서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AI 기반 학습 도구와 플랫폼이 일상화된 지금, 스스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인재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많은 부모님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의대나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20세기식 성공 공식을 좇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자기 생각, 자기 언어, 자기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깊이 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내면을 단련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 내면의 힘이 결국, AI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무기가 될 것입니다.”
─ 앞서 ‘자기 생각과 언어,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총장님께서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교육은 그것을 어떻게 끌어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즘은 챗GPT가 글을 쓰고,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AI도 꽤 창의적인 것 같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기반한 조합일 뿐이에요. 인간의 창의성은 그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깊은 차원에서 발현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지식은 제한이 있지만, 상상력은 무한하다’라고 말했죠. 그는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예술가처럼 세상을 상상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점이야말로 인간만의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익숙한 정보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의심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이죠.
하지만 지금의 교육 현실은 이런 창의성을 키워내기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어땠어?’라고 물으면 ‘맛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고, ‘재미있었니?’라고 물어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죠. 늘 정답이 따로 있다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창의성이란 단지 아이디어가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생각을 표현하며, 그것을 새롭게 연결하고 구성할 수 있는 힘입니다. 교육은 바로 그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창의성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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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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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성과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제는 대학 교육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시점입니다. 기존처럼 교수가 강의를 통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어요. 온라인 강의가 일상화됐고, AI를 활용하면 원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공간’이 되어야 해요. 과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미국의 대학은 진짜 대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진짜 대학’이란 교수와 학생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으로의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 시스템 자체를 사람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거죠.
그래서 태재대학교는 ‘교수가 강의하지 않는 수업’을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핵심 개념은 짧은 영상 콘텐츠로 사전에 전달하고, 실제 수업 시간인 100분은 온전히 학생이 주도하는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으로 구성합니다. 교수들이 퍼실리테이터가 되어 수업을 유도하면 학생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퀴즈를 풀고, 문제해결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통해 배워가도록 설계돼 있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고력, 창의성, 협업 능력이 함께 길러집니다.”
─ 대학 교육이 변화하는 만큼 교수자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총장님께서 보시는 앞으로의 교수자는 어떤 철학과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앞으로 교수자는 단순한 ‘강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스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작년에 스승의 날을 맞아 비슷한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감기에 걸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었던 저를 담임 선생님께서 양호실로 데려가시며, 간호 선생님께 ‘이 아이는 제 아들이니 잘 좀 봐주세요’라고 말씀하셨던 장면이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기억하는 스승은 지식을 잘 가르쳐준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품어줬던 존재였죠.
지금은 AI 디지털교과서가 지식을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합니다. 교수자보다 설명을 더 잘하고, 학생이 어느 부분에서 이해를 놓쳤는지도 실시간으로 분석해주는 시대죠. 그렇다면 교수자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제 교수자의 본질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학생이 사람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과거에는 ‘지·덕·체’를 함께 기르는 전인교육이 강조됐지만, 산업화 이후 교육은 점차 지식 중심으로 편중됐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스스로 탐색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직접 부딪혀보고, 협력하고, 실패를 겪어보면서 비로소 자기 성향을 이해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서로 부딪히고 협업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자기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앞으로 교수자는 단순한 수업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인간다움의 근육을 길러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교수자가 지녀야 할 철학이며,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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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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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대학은 어떤 사회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학은 앞으로 사회 안에서 훨씬 더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식을 생산하고 연구하는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며, 실제로 많은 연구 중심 대학들이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 특히 학부 교육이 지닌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최근 대학 현장을 들여다보면 교수들이 연구와 논문 작성에 몰두하는 사이 학부 수업은 점차 형식화되거나 소홀해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대학의 가치는 오히려 학부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하나의 전공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어려워요. 따라서 대학은 학부 단계에서 기초 역량을 체계적으로 길러주고, 대학원에서는 이를 보다 심화·확장할 수 있도록 교육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 역량은 단순한 지식의 암기나 전달을 의미하는게 아니에요. 비판적 사고력, 협업과 소통 능력,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가짜 뉴스를 분별해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등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역량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태재대학교는 학부 교육에 교육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갖추도록 사고력, 표현력, 문제 해결 능력 등 전방위적인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이 앞으로 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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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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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학이 학생들에게 반드시 길러줘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요?
“AI는 이미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앞서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 즉 윤리와 도덕, 공감 능력,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력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겁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예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불공정하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진정한 공정함은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조율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오늘날 대학 교육이 가장 먼저 길러야 할 역량은 공감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입니다.
태재대는 이걸 실천하기 위해 전원 기숙사제를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함께 지내며 부딪히고, 타협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함께 겪는 경험을 통해 이런 역량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거죠. 게다가 저희 학교 학생들은 배경도 참 다양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튀니지처럼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도 있고, 모델, 전직 교사, 예술가 등 삶의 궤적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이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 대학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학 교육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지금 대학에 필요한 건 복잡한 규제나 획일적인 지침이 아니에요. 각 대학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율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틀이 근본부터 흔들릴 정도로 큰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에요.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교육의 존재 이유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드는 존재죠. 학생들의 생애 주기, 학습 방식, 직업 구조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기준과 틀에 대학을 묶어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대학마다 철학과 지향점, 학생 구성과 교육 여건이 모두 다른데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고, 동일한 구조를 강요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창의적인 혁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행정 시스템은 마치 이미 성인이 된 자녀에게 계속해서 ‘이 옷을 입어라’, ‘저 길로 가라’며 간섭하는 부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학은 본질적으로 배움과 실험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모든 학교를 동일한 조건 속에서 경쟁하도록 만든다면, 결국 어느 누구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으려면 ‘감독’보다는 ‘신뢰’, ‘통제’보다는 ‘동반자적 지원’이 우선돼야 합니다. 각 대학이 고유한 철학과 정체성에 따라 자신만의 교육 모델을 자율적으로 실현해갈 수 있도록, 보다 넓고 깊은 자율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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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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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AI시대를 살아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청년들에게 항상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Be a voice, not an echo.’라는 미국 명언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지, 메아리가 되면 안 된다’라는 뜻이에요. 많은 청년들이 자신만의 생각이나 방향 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데 익숙해 보여요. 특히 좋은 대학, 대기업, 안정된 직장이라는 공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제 그런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 조직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일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기업들도 대부분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어요. 꼭 처음부터 큰 조직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소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자신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장을 경험하느냐예요. 지금은 졸업장이 아니라 실행력, 스펙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조직보다 개인 네트워크 중심의 프리랜서형 직업 구조가 훨씬 많아질 겁니다. 우버나 배달 플랫폼처럼 각자 연결돼서 일하는 세상이 이미 오고 있어요.
이런 시대를 살아갈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한 건 자신 안에 있는 고유한 힘, 자기 목소리,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에요. 그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그게 바로 AI시대를 살아갈 진짜 경쟁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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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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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고, 2015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과학재단 이사, 서울연구원 이사, 한일미래포럼 대표 등 다양한 공공‧학술 분야에서 활동해왔으며, 2023년에는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으로 불리는 태재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에는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에 위촉되며 혁신적 리더십을 이어가고 있다.
- “창의성과 공감, 질문력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무기…강의 대신 토론, 평가 대신 성장 중심으로 대학 교육 구조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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